이번엔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다! 아버지 칠순을 맞아 온 가족이 다녀오는 것으로 지난해부터 계획을 짰다. 내 사전에는 없는 패키지 대신 선택한 자유여행......모두 4박 6일 일정이다. 그래도 새벽에 도착, 새벽에 귀국하는 비행기라 온전히 4일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잘 견뎌줄까 내심 걱정했지만, 사촌들끼리 만나니 자기들끼리 잘도 논다.
여행사에서 비행기표만 끊고 숙소예약, 관광코스, 일정, 이동, 쇼핑 등 모든 정보를 철저히 입수해서 필요한 것들은 미리미리 한국에서 예약을 모두 해놨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숙소는 수트라하버리조트 마젤란......시내와의 교통편과 공항에서의 거리, 수영장 규모와 가격 등을 고려해서 결정했다. 리조트는 한국인에게만 특별히 골드카드를 발급해주는데,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해주는 이것도 숙소를 선택할 때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골드카드로 마누칸섬 왕복이 가능하니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오기엔 제격이었다. 다만, 방이 조금 작은 것과, 시설은 훌륭했지만 사이판 월드리조트같은 놀이시설이 조금 부족한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어쨋든 인천공항에서부터 거의 6시간 가까이 날아가 코타키나발루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12시가 넘어간다. 긴 줄을 기다려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후끈한 밤공기가 폐속 깊이 열대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작은 택시와 밴 하나에 나눠타고 10분만에 리조트 로비에 도착한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2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간단히 샤워를 한 후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아침, 피곤했지만 눈은 일찍 떠졌다. 베란다의 커텐을 걷은 순간, 세상은 온통 투명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깨질듯 파란 하늘, 그 하늘이 비쳐보이는 것같은 파란 바다, 싱그러운 초록빛의 나무들과 그 사이에 꽂히는 강렬한 햇살......
첫날은 북보르네오 증기기관차를 타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기차는 수요일과 토요일에만 운행한다) 골드카르를 신청하지 않은 관계로 아침을 간단히 컵라면으로 때웠다. 그리고 로비에 나와 역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10분정도 가면 도착하는 출발역, 탄중아루.
기차는 이미 대기하면서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다. 한국에서 가져간 예약서를 내밀자 탑승권과 여권을 준다.(리조트에서도 예약할 수 있지만, 이때가 연휴인지라 2달 먼저 한국에서 전화로 예약해놨었다.) 모두 총 4개의 역을 왕복 4시간에 걸쳐 다녀오는 여정이다. 각 역을 정차할 때마다 승무원이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고, 2곳 정도에서 잠시 정차해 쉬는 시간을 준다.
내부는 조금 덥긴 했지만 깔끔하다. 식민지 시절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이라는데, 승무원들 복장도 그렇고 신경을 많이 쓴 것같다.
드디어 출발, 차창밖으로 스쳐지나는 수상가옥들......
기차길 옆으로 중국식 불교사원도 보인다. 이 역에서는 잠시 내려 사원을 둘러보도록 20여분의 시간을 준다. 사원은 조금 어수선했지만, 나름 흥미로웠다.
사원가는 길에 만난 현지 어린이들.....
마지막 종착역에서는 시장을 둘러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탄중아루역으로 돌아올 때 점심식사가 제공된다. 5단 찬합이 개인당 한 개씩 배급되는데, 그것을 분해하면 내용물은 아래와 같다. 보이는만큼 꽤 맛있다. 정말 싹싹 비워먹었던 것같다. 다 먹고 나면 아이스크림과 커피도 제공된다.
다시 리조트로 돌아온 후 잠시 더운 햇빛을 피해 2시간 정도 쉬었다. 우리 대가족을 인솔해야 하는 나는 혼자 나와서 리조트를 둘러보며 지리와 동선을 파악하는 중......보이는 건물은 마젤란 쪽 수영장에 접해있는 건물인데, 수영장에 붙어있는 뷔페식당이 우리가 아침을 해결한 곳이다. 가끔 저녁도 먹었는데, 저녁메뉴도 생각보다 훌륭했다.
강렬한 태양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질 때 즈음, 가족들은 모두 시내로 향했다. 호텔에서 운영하는 셔틀을 타면 금방 시내다. 셔틀은 1시간에 1대 꼴로 운행하는데, 골드카드가 있으면 공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유명한 맛집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웰컴씨푸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찾는 건 어렵지 않은데, 큰 길을 건널 땐 조금 조심해야할 듯......여긴 보행자우선이 아니고, 횡단보도엔 신호등도 많이 없다. 그냥 현지인들 따라서 눈치보다가 같이 건너면 된다. 레스토랑은 약간 어수선했지만, 착한 가격에 양도 푸짐, 맛도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야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필리피노마켓은 생선부터 과일까지 식료품을 주로 파는데, 여기서 간단히 저녁을 먹을 수도 있다.
튀김 종류도 있고......
닭꼬치구이도 있다.......
싱싱한 생선에......
구워서 파는 생선을 사다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다.
여기서는 망고가 정말 흔하고 싸길래 한아름 샀다. 그리고 타이거맥주도 사서(센터포인트 건물 지하에 가면 슈퍼가 있는데, 맥주가 모두 품절! 할 수 없이 24시간 편의점에서 조금 비싸게 살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들어가 여행 둘째날밤의 아쉬움을 달랬다.
다음날 아침......어제보다 한결 더 가뿐해진 몸과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열었다. 여전히 투명한 햇살이 눈부시다. 오늘은 하루종일 수영장에 있을 예정이다.
오전에는 아침식사를 하는 마젤란쪽 수영장에서 놀았다. 벌써 점심시간......오후엔 마젤란과 퍼시픽 사이에 있는 마리나클럽의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점심은 골프클럽에 있는 식당 '더 테라스'에서 했다. 시원한 그린을 바라보며 하는 식사도 꽤 운치있었다.
마리나클럽에 딸린 수영장은 모두 2개....하나는 선수용 규격 수영장, 그리고 또 하나는 슬라이드가 딸린 수영장이다.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마젤란쪽 보단 훨씬 놀기도 좋고 운치고 있었는데, 애들도 그리 생각했나보다......4일 연짱 여기서만 놀았으니....퍼시픽은 생각보다 멀었다. 걸어서 10분 정도인데 덥기도 하거니와 부모님이 고생하실 거 같아 그 쪽 수영장은 이용해보질 못했다.
넷째날은 마누칸섬 일정으로 계획했다. 마젤란에서 퍼시픽쪽으로 가다보면 씨퀘스트라는 조그마한 건물이 나온다. 바로 여기서 예약을 하고(전날와서 예약하면 된다) 시간에 맞춰 나오면 보트를 탈 수 있다. 타월은 공짜로 빌려주는데, 작년까지 있었던 스노쿨링 장비 대여는 유료로 전환되었다. 간단히 접히는 은박지로 된 돗자리를 가져갔는데 정말 유용하게 써먹었다.
배로 5분만에 드뎌 마누칸섬에 도착......바다에서 길게 뻗어 설치된 선착장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같다.
코타키나발루 앞에 떠 있는 5개의 섬들은 해양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입도할 때 입장료를 내야한다. 섬 안에는 곳곳에 2차 세계대전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뒤편에 보이는 곳은 바베큐점심을 제공해주는 곳(물론 골드카드에 포함되어 있다)......개시가 되면 좀 일찍 오는 편이 좋다. 음식이 리필되기는 하지만 새우같은 인기음식은 금방 동나버린다.
자! 이제 슬슬 놀아볼까......
수심은 그리 얕지 않다. 5미터 정도만 들어가도 수심이 꽤 깊어진다. 하지만 산호초라 파도는 약하다.
애들과 함께 놀다보니, 고기들이 정말 엄청 많다. 물이 맑아서 다 보이는데, 제법 큰 고기들도 나타난다. 조카가 잠자리채를 가져왔는데, 그냥 휘젓고 다녀도 그 안에 몇 마리가 걸려든다. 멸치같이 생겼는데, 농담삼아 먹어보라했더니 진짜 먹는다......맛이 꽤 있었는지 계속 잡아댄다......그래서 나도 때아닌 멸치회를 조금...ㅎㅎ...
패러세일링도 어제 보트예약할 때 같이 예약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면 인솔자가 찾아온다. 지난번 사이판에서 해봤는데도 살짝 긴장된다. 우리는 2인용을 이용해서 할아버지가 작은 아들과, 할머니가 큰 아들과, 그리고 내가 막내와 함께 탔다. 중간에 몇 번 물속에 발을 담그게 해주는데 스릴만점이다. 바다위에서 바람만을 느끼며 떠 있으면 시간이 정지한 듯, 그 느린 고요함 속에 하늘에서 유영하는 기분이 최고다.
섬에 돌아와 조금 쉰 후 시내 마사지숍에 갔다.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자스민이라는 곳인데,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고 시간맞춰 가니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 좋았다.
마지막 날은 역시 수영장에서 보냈다. 골드카드가 있으면 오후 6시 레이트 체크아웃이 된다. 비행기가 새벽비행기라 체크아웃 이후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리마리민속마을을 미리 예약해두었다. 자유여행으로 올 경우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또 다른 숙소, 마리하우스에서 투어신청이 가능하다.
이른 아침,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며 리조트 곳곳을 산책해본다.
마젤란쪽에 있는 자그만 해변......정말 조그맣다.
여기는 퍼시픽쪽에 있는 해변....마젤란쪽보다는 조금 큰 편이다.
퍼시픽쪽에 있는 수영장......수영장 가운데 바가 있는게 특이하다.
정말 알차게 보낸 휴가였다.
체크아웃을 하고나니 마리하우스 사장님께서 직접 로비로 나와 우리를 맞아주셨다. 밴을 타고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민속마을......사실 이 곳은 어중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택했는데, 정말 기대이상으로 재미있던 곳이었다.
하루에 서너차례 투어가 있었고, 우리는 당연 야간투어였다. 우리 포함, 홍콩과 호주 등지에서 온 여행객 20여명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숲 속 곳곳에 설치된 마을집들을 들어가 구경하는 구조다. 마을집들은 각각 추장집, 음식만드는 집 등으로 특화되어 있다.
우선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계곡에 설치된 흔들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간다.
곡식저장고 같은 집과 일반 가정집을 둘러보고 나오면 현지인들이 직접 전통음식을 만들어 시식을 하게 한다. 꼭 우리 대통밥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는 전통술과 차, 튀김도 준다.
단순 설명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직접 체험을 하도록 하니 애들도 재미있어 한다. 전사들의 담력을 시험하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트램펄린도 타고, 독침을 대나무통에 넣어 입으로 불어 쏘는 경험도 한다. 헤나로 문신도 그려주고, 반딧불이도 잡고......암튼 재미있었다.
어느새 어둠이 짙어지면 제일 마지막 코스로 민속공연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공연이 끝날 때 즈음 참가자들을 모두 무대로 불러내 함께 대나무춤을 추게 된다. 그리고 나면 저녁식사 시간......어느덧 공항에 갈 시간이 다가왔다.
코타키나발루는 세계 3대 석양을 볼 수 있는 포인트라고 한다. 리조트에서 바라본 석양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깨끗한 자연 덕분이리라......지는 해를 보면서 언젠가 다시 올 날을 기약하며 이제 코타를 떠난다......
이번 여행은 부모님을 모시고 모든 가족이 함께 하니, 우리 가족만 여행할 때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가족이건, 연인이건, 친구건 함께 공유할 추억이 많을수록 가까워지는 법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춘기가 되어서도, 대학교에 가서도 부모님과 여행하는 것을 너무나 즐거워했다. 어렸을 적부터 방학이면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함께 해왔기에, 그것도 패키지가 아니라 우리가 정하고, 만들고, 헤매면서 쌓았던 추억때문이리라......다음엔 그 추억의 한 장을 또 무엇으로 채울까....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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