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아시아

북인도기행(11) - 득도의 땅, 부다가야

budsmile 2012. 8. 2. 11:27

부다가야로 가는 길은 정말 멀었다. 구도를 향한 길 만큼이나......

 

12시간 연착된 기차는 어둑어둑해지는 오후 5시 30분경 인근 대도시인 가야(Gaya)에 도착하였다. 가야에서 부다가야까지 가는 모든 교통수단은 완전 끊긴 상태......또다시 카주라호의 악몽을 떠올리며, 여기에서 숙박을 해야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바라나시 기차역에서부터 하룻밤을 함께 지샜던 미국인들과 나, 그리고 또다른 서양인 배낭족 한 명, 티벳 아줌마 한명이 즉석에서 의기투합해 합승택시를 100달러에 빌리기로 합의를 봤다. 저녁이라 택시기사들이 부르는 게 값이었으나, 이 곳 사정을 잘 아는 티벳아줌마가 이리 매치고 저리 매쳐(역시 아줌마들의 힘이란!!) 가격을 절반 이상 깎았다.(역시 인도에서의 나의 행운은 계속되고 있는 걸까~~)

 

<부다가야의 마하보디대탑, 출처: travel.sulekha.com)>

 

부다가야까지는 택시로 약 40분 정도 걸렸다. 이제 완전히 깜깜해졌는데, 부다가야의 중심, 마하보디대탑 인근 버마사원에 택시가 멈췄다.(여기도 사르나트처럼 성지 주변에 세계 각국에서 세운 사원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버마사원은 복도며 불당에 빼곡히 설치된 야전침대 하나씩을 여행객들에게 거의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두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침대 하나씩 차지하고 짐을 풀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사르나트에도 있었다면 분명 여기도 한국절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주변 릭샤꾼들에게 한국절을 아는 사람 있냐고 물었다.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고, 흥정을 한 다음 나는 바로 사이클 릭샤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사이클릭샤(출처: tropicalisland.de)>

 

나는 한국절도 여기 수많은 절들 사이에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왠 걸! 사이클릭샤는 자그마한 부다가야 시내를 금새 벗어나더니, 가로등도 없는 정말 캄캄한 비포장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이 릭샤꾼은 어떻게 자전거를 모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신기함도 잠시......나는 곧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절이 진짜 있는지도 모르는 초행 여행자인 데다, 그 절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릭샤꾼이 나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기라도 한다면......아니, 이 릭샤꾼이 강도로 갑자기 돌변한다면......그렇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곳에 무작정 내릴 수도 없었다. 여행자의 버릇이란, 극한의 두려움이 닥칠 때에는 빨리 포기하고 그저 운명에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캄캄한 허공에서 삐걱거리는 자전거 바퀴소리만이 크게 울리는 정적이 무지 불편했다. 생각해보니, 그 수많은 릭샤꾼 중에 한국절을 이 사람만 안다는 것도 의심스러웠고, 얼굴도 정말 산적같이 생겼던 것같기도 했다. 아! 정말 내 운은 여기까지인가(그동안 인도에 와서 운이 꽤 좋았다고 자만했던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다!)~~이대로 며칠 후 한국신문들이 '인도에서 실종된 배낭족'으로 대서특필할 기사의 주인공이 되고 말 것인가~~난 뭔가 해야했다. 여전히 자전거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산적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 가족얘기를 했던 것같다.(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아무리 악독한 범죄자라도, 자신이 잡은 사람을 '인질'이 아닌 '인간'으로 보이게 한다면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참 별게 기억났다!) 산적은 귀찮은 듯, 말도 짧았다. 내 혼자 떠드는 소리만 찬 공기를 가르며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 때였다. 갑자기 자전거가 멈추더니 나더러 내리랜다......시끄럽기만 한 이 놈을 더 이상 못 참고 생매장이라도 해버리겠다는 말투였다. 순간 나는 요샛말로 '멘붕'이 되었다. 내가 드디어 인간으로 보인건가...그렇다면 작전 성공인가? 아니면 당신 얼굴 자세히 못 봤다고 우기면서 내 배낭과 옷이라도 벗어주고 이제부터 몸값협상을 해야 하는건가?

 

산적은 역시 과묵하게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허공으로 팔을 들어보이며 저 멀리를 가르킨다. 내 너를 가엾게 여겨 특별히 살려줄테니, 열 셀 동안 저기로 도망가라는 듯 보였다. 열 세고 나면 자전거 어디에 숨겨둔 도끼라도 가져올 태세였다. 하지만 눈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도망간들 늪에 빠지거나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져 금방이라도 잡힐 것이다. 역시 협상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지만, 도대체 이과묵한 산적놈의 심중을 알 수가 없다. 이 자식아...말 좀 하라구.....나는 궁지에 몰린 생쥐처럼 개겼다. 이 캄캄한 곳에 내려주면 어떡하란 말이냐?(말해놓고, 순간 후회했다) 그러자 산적이 간단히 내뱉었다. '한국절~'

 

정말이었다. 자세히 보니, 저 멀리(정말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아른거렸다. 나는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산적 볼에 뽀뽀라도 할 뻔 했다. 다시 손님과 기사로 돌아온 나는, 기사에게 나를 저 곳까지 책임지고 데려다 줄 것을 당당히 명령했다. 하지만 실상 나는 논두렁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얌전한 강아지처럼 산적 뒤를 졸졸 쫓아가며 드디어 한국절에 도착했다. 그리고 산적에게 뺏길 뻔한 팁도 인심쓰듯 두둑이 얹혀 돌려보냈다......

 

헌데 절은 온통 철문에 두꺼운 쇠사슬로 건물 자체를 몇 겹으로 칭칭 동여맸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불빛은 그 중 한 방에서만 겨우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철문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사람을 불렀다. 인기척이 없다. 안돼..여기까지 겨우 왔는데....산적도 가버리고 없는데.....나는 거의 울부짖으며 다시 철문을 흔들어댔다. 주변에 똥개들인지 들개들인지 잠을 깨서 귀찮다는 듯 한꺼번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불빛이 새어나온 방에서 스님 한 분이 나오신다. 내 눈에 부처님처럼 후광이 비친다. 아~살았다~!

 

방에는 그 인도인 주지스님말고 한국에서 온 여자배낭족 한 명이 함께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단다. 이 곳에는 떼강도들이 출현해서 휩쓸고 다니는데(부다가야가 있는 인도 비하르주는 인도에서도 가장 빈곤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인근 베트남절도 최근 불에 타고 승려가 죽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야밤에 누군가가 여기 찾아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나도 나의 무모함에 갑자기 소름이 끼쳐왔다. 어쨋든 주지스님은 자신의 침대를 나에게 한사코 양보하였고, 게다가 배고픈 나를 위해 짜파티와 파파야를 챙겨주셨다. 우리들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다. 모기들이 내 몸을 물 건너온 별미라고 생각한 듯 빈 자리 없이 빨대를 꽂아놓은 바람에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정말 늦은 아침까지 맛있는 꿀잠을 잤다.......

 

<한국절의 인도인 주지스님>

 

아침에 보니, 또 한명의 한국인 아가씨, 그리고 바라나시의 화장터 근처에서 잠시 인사하고 지나쳤던 비구니 스님까지 두 분이 더 계셨다. 우리는 밥에 된장국을 만들어서 아침을 먹고 주지스님과 어제 못다한 얘기들을 하며 오전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시주를 하고 마하보디 대탑으로 향했다.

 

<한국절 맞은편에는 절의 살림을 도맡아하는 인도인부부가 살고 있다. 미소가 아름다웠던 그 부부의 아이>

 

부다가야는 불교에서는 최대의 성지이다. 바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소인 보리수나무(물론 그 당시의 나무는 아니고,후대에 다시 심은 거라 한다) 옆에는 대탑이 세워져 있다. 아쉽게도 내가 갔을 때에는 대탑이 공사중이라 비계로 둘러싸여 있었다. 한 바퀴 돌고나서, 신발을 벗고 대탑안으로 들어가니  황금빛 불상이 번쩍인다. 내일 달라이라마가 여기 온다고 해서 그런지 많은 티벳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탑 뒤편에는 보리수나무가 반긴다.

 

그 때의 그 기분은 어땠을까?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은 좌르르 옥굴러가는 소리를 내고, 저 멀리에는 온통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골풍경만이 펼쳐진 그 곳에서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환희의 순간, 그 깨달음의 순간에 그는 조용히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 새들도 지저귐을 멈추고, 태양도 숨죽이며 그에게 다가간다. 시공을 뛰어넘어 그 나무는 나에게 많은 것을 얘기하는 듯하다. 깨달음이라!......아! 깨달음이라......!

 

생각해보니, 나도 부다가야에서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모든 것이 다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나를 그 야밤에 치안도 불안한 곳까지 데려다 준 고마운 릭샤꾼을 산적으로 단정한 것도,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 것도 다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진실을 보고도 허망한 미망에 사로잡혀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다 내가 선별해서 받아들인 이미지와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멋대로 조합해낸 마음에서 발생한 것이다. 실상 그 마음이 곧 나라고 하지만, 나는 내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자신있게 말들 하지만, 그 마음이 나를 얼마나 속이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세상을 삐뚫게 보이게 하는지......나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 마음을 오히려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그 불순한 의도를 숨기고 있는 마음은 나를 창살처럼 휘감고 있어, 그로부터 벗어나 무소유, 무욕심을 넘어 무아에 이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이다.......

 

<마하보디 대탑>

 

<이날은 티벳인들로 엄청 붐볐다>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나무 아래>

 

밝은 햇살아래 천천히 사원을 둘러보고 박물관을 구경한 다음, 티벳식당에 들러 국수를 먹었다. 티벳인들은 생긴 것도 우리랑 같은 몽골인인데 음식도 우리 입맛에 딱이다. 나이란자라강을 산책하듯 둘러보고 주변 시장에 가서 짜이를 한 잔 시켰다. 짜이를 파는 아저씨의 아들이 붙임성이 좋아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다시 가야로 향했다.

 

<나이란자라강의 모습, 건기라 물이 별로 없다>

 

<시장의 짜이 좌판 가게 아저씨 아들과 함께, 역시 미소가 아름다운 아이였다>

 

가야로 오는 기차에서의 일이다. 기차가 무굴사라이역에 도착해서 잠시 정차하자, 한 꼬마가 재빨리 조그만 비로 좌석 밑의 쓰레기들을 쓸어낸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다가 좀 후에 아이가 손을 벌리며 다가오기에 무뚝뚝하니 보내버렸다. 순간 그 아이의 손에 들린 비를 본 것이다. 어찌나 내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럽던지! 갑자기 라미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조그만 아이는 그래도 구걸이 아닌, 청소를 해준 댓가를 바라면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그것조차 외면해버린 것이다. 자신은 가난하지만, 네가 행복하다면 돈에 상관없이 너를 기쁘게 해주겠다던 라미스의 말은 기차안에서 내내 내 마음을 착잡하게 하였다. 아마 인도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나의 속물같은 모습을 더욱 더 발견하고 놀라고 부끄러워하게 될 것같다. 더러운 곳에 익숙한 고기는 깨끗한 물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법이니......

 

free coun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