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낭여행]/아시아

북인도기행(9) - 죽음이 삶처럼 피어오르는, 바라나시(Varanasi)

budsmile 2012. 7. 13. 18:31

드디어 바라나시(Varanasi)다. 시바신이 살고 있는 힌두교도들의 성스러운 도시......이번 인도여행에서 가장 많은 기대와 호기심이 일었던 도시였다. 당초보다 2시간 연착되어 새벽 6시에 도착한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오토릭샤를 집어타고 바라나시의 중심가 다샤수와메드 거리까지 왔다. 주변의 수많은 게스트하우스 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는 바로 강가로 향했다.(강가, Ganga는 갠지스강의 원래 이름이다! riverside를 말하는 게 아니다!!)

 

어둠이 채 빠져나가지 못한 어스름속에서 벌써 몇 명의 힌두교도들은 음부만 가린 채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이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시기, 그들은 걸어서, 또는 짐짝같은 기차를 타고 여기와 목욕을 하고 모든 업을 떨쳐낸 다음, 다시 화장터의 재로 여기에 뿌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물은 겉으로 보기에도 시컴하고 온갖 쓰레기로 뒤범벅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개의치않고 그 물로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빨래를 하거나 식기를 세척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내가 라미스를 만난 것이......

 

<바라나시의 아침 풍경>

 

라미스는 안개낀 갠지스강에서 마치 시바신이라도 현신한 듯, 갑자기 내 옆에 나타났다. 자기가 보트를 젓는데, 타지 않겠냐는 것이다. 사실 이 곳에는 관광객들도 많이 오기 때문에 그들을 상대로 보트를 태워주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바가지가 심해 나는 처음부터 보트는 타지 않을 요량이었다.

 

어차피 타지 않을 것, 나는 그가 제시한 금액을 후려쳐 말도 안되는 50루피를 불렀다. 그런데 그가 한번에 흔쾌히 승낙한다. 어쩔 수 없이 그의 보트에 몸을 실었다.

 

<보트를 타고 바라본 다샤슈와메드 가트, 가트(Ghat)는 힌두어로 강가에 있는 돌계단을 의미한다>

 

<보트에서 바라본 풍경-1, 빨래하는 사람들>

 

<보트에서 바라본 풍경-2, 쓰레기 가득한 물에서 자맥질을 하는 사람>

 

<보트에서 바라본 풍경-3,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는 사람들>

 

우리는 배를 타고 상류쪽 마니카르니카 가트로 향했다. 노천 화장터로 유명한 곳이다. 새벽이지만, 시뻘건 화염속에 장작더미 위에 놓여진 한 구의 시체가 타들어가는 연기로 가득했다. 우리는 배를 대고 그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장작과 시체가 타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시체가 타며 내는 역겨운 냄새만이 그 곳을 지배할 뿐이었다. 갑자기 왠지 모를 뜨거움이 나의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통제할 틈도 없이, 그것은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눈물로 바뀌어 흐르고 있었다. 죽음을 대면한 나의 존재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었다. 도대체 너란게 무엇이냐고......왜  살아야 하냐고......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그리고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냐고......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죽음 앞에서 네가 도대체 무엇이냐고......한꺼번에 쏟아지는 질문에 나는 그만 나를 잃어버렸다.

 

<manikarnika ghat 화장터 모습, 화장터는 사진촬영 금지라 인용했음을 밝힌다. 출처: tripadvisor.in>

 

내가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완전히 몰입한 후 다시 의식을 찾기 시작한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라미스는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없이 노를 젓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화장터 반대쪽 강가에서 빨갛게 타오르기 시작한 해가 왜 그렇게 고맙던지......새로운 생명을 주려는 듯 태양은 또 말없이 나의 이마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빠알간 장작불에 피어오르던 죽음은 나의 가슴을 뜨겁게 정화시키며 수많은 화두를 생채기로 남겨둔 채 그렇게 새로운 삶으로 나를 내몰았다. 역시 빨갛게 부활한 태양과 눈을 맞추며 말이다.....

 

<갠지스강에서 바라본 일출>

 

<일출과 함께 나의 소원을 담은 초를 떠내려 보냈다>

 

나는 그 이후로 매일 저녁, 그리고 새벽녘이면 라미스와 함께 보트를 몰고 나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나는 여기서 내 삶에 대한 해답을 조금이라도 찾고 싶었는 지 모른다. 때문에 낮에도 마니카르니카 가트에 가서 화장터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시체들은 비단과 꽃에 둘러싸여 대나무에 실려와 마지막으로 갠지스 강물에 몸을 적신다. 시체를 태우는 사람은 아버지나 친척 중 한 사람으로, 이 모든 일을 하기 전에 몸에 있는 모든 털을 다 깎고 흰 천으로 아랫도리를 가려야 한다. 한 구의 시체를 태우는데는 보통 세 시간이 걸리는데, 부자들은 그만한 수의 장작을 구입할 수 있지만, 가난한 이들은 장작을 미처 다 사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해 그냥 타다만 시체들이 강가에 던져지기도 한다. 준비가 다 되면 통나무를 쌓은 곳에 시체를 올려 놓고 다시 통나무를 쌓은 다음, 상주가 짚에 불을 붙여 그 주위를 몇 바퀴 돌고는 밑에 불을 지핀다. 그런데 잘 타는 곳이 있는가하면, 장작이 잘 마르지 않았는지 금새 꺼져 버리는 곳도 있다. 그럴 경우엔 꺼멓게 그을린 시신이 얼굴, 팔 또는 다리를 내놓게 되고, 때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개들이 그 중 하나를 물고 달아나기도 한다.

 

<화장중인 시체, 출처: cohn17.com>

 

모든 시체들이 다 화장되는 것은 아니다. 동물과 아이, 사두라 불리는 수행자와 문둥병자는 바로 갠지스 강에 던져진다고 한다. 나도 보트를 타고 돌아다니는 동안 동물들의 사체는 수없이 봤고, 아이의 시체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물에서는 악취는 물론, 그 많은 순례객들이 피부염이나 다른 질병으로 고생한 사례가 없다고 하니 정말 시바신의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랴......(갠지스강은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은 물이고, 몬순 시기에 강물이 한꺼번에 불순물들을 쓸어내려가 항상 깨끗함이 유지된다는 분석도 있다.)

 

<강가에 떠다니는 아이의 시체>

 

라미스는 다음날 아침, 나에게 노를 저어보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우리는 상류까지 2시간여 동안 뱃놀이를 하며 놀았다. 나는 그가 내 또래인 줄 알았는데, 15살 어린 소년이었다. 홀어머니를 모신 외아들인데, 어릴 적부터 생계전선에 뛰어든 탓에 글을 읽지 못한다. 그런데 마음씀씀이가 정말 순수하고 곱다. 내가 그동안의 보트값으로 얼마를 건네자 한사코 거절한다. 그러면 내가 식사를 대접하겠다니까, 어머니가 섭섭해하실 거라며 정중히 사양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나에게 "Are you happy?"라고 묻는다.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면서, 돈이란게 얼마나 무의미한 건지, 인생에 있어 자신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왜 행복이 되어야 하는지 담담히 말한다. 난 솔직히 감동했다. 15살 소년, 우리로 치자면 중2에 불과한, 그런데 생각하는 깊이는 웬만한 어른 이상이다. 그는 자신이 가야할 길과,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스스로 깨치고 있었다. 조금 더 잘 살지는 몰라도, 교과서 안 지식이 전부인 양 달달 외며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던 우리들이 갑자기 초라해졌다. 그는 나보다 연배는 어렸지만, 지금까지도 내 삶의 멘토다.

 

<내가 노를 젓는 동안, 라미스와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라미스와 헤어지기 전 찍은 기념사진>

 

저녁에는 다시 라미스와 배를 타고 갠지스강의 동안으로 건너갔다. 도시는 서안에 밀집되어 있고, 동안은 널따란 백사장이다. 도시 뒷편으로 빨간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강에는 소의 시체가 떠다닌다. 간혹 커다란 물고기가 수면밖으로 나와 유영하길래, 물어봤더니 돌고래라고 한다. 지금은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한 담수돌고래였다. 도시의 스카이라인 위로는 수많은 연들이 날아다닌다. 때론 폭죽이 터지기도 하는데, 방금 끝난 파키스탄과의 크리켓 경기에서 우승했기 때문이란다. 그 옆 버닝가트(마니카르니카 가트)에서는 이 떠들썩한 분위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10여개가 넘는 빠알간 불꽃이 피어오른다.

 

<갠지스 동안에서 바라본 바라나시의 모습>

 

우리는 동안에 있는 모래사장에 배를 대고, 짜이 한잔을 사서 배 위에 앉아 일몰을 마지막까지 바라본다. 이 곳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의 인상은 색다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 한쪽에선 죽은 자의 몸을 불태우고, 그 재가 뿌려진 강가의 바로 옆에선 산 자들이 내세를 위해 물을 몸에 뿌린다. 시작과 끝, 일출과 일몰, 그리고 삶과 죽음......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살아야만 하는 것과 죽어야만 하는 것!

 

죽음을 이렇게 우리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엔 놀랐지만,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죽음은 우리 곁에 있어야 삶에 대한 겸허를 가르쳐줄 수 있다. 죽음을 애써 모른척, 우리와는 관계없는 것인 양 만들어 우리 시야 바깥에 보내버리는 순간, 죽음은 그저 무서운 것, 두려운 것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애써 죽음을 외면하는 자는 삶에 충실할 수도 없다.

 

다시 배를 타고 어두어진 화장터 바로 앞까지 갔다. 시뻘건 불꽃이 더욱 더 활활 타오른다. 그 옆에는 열반으로 가기 위한 시신이 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첫날처럼 눈물이 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 건지, 말로 명확히 설명할 순 없었지만 나의 가슴이 살아있는 피로 끓어오름을 느꼈다. 비록 여기 머무는 동안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답을 찾고자 하는 나의 의지'는 확인한 셈이다. 시간은 흘렀지만 지금도 힘들때, 교만해지려할 때, 욕심으로 약해질 때 항상 내 마음은 바라나시 버닝가트로 달려가 타오르는 불꽃을 본다. 

 

<바라나시의 마지막 밤을 갠지스 동안에서 보내다>

 

<숙소 옥상에서 바라본 바라나시 전경>

 

자정무렵, 한적해진 시내를 릭샤를 타고 벗어나 역에 왔다. 기차역안은 노숙자와 나환자, 그리고 순례자들이 자리를 펴고 빼곡히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기차가 7시간 정도 연착된다는 안내에 따라 나는 역에서 만난 세 명의 미국인과 함께 역 안의 리타이어링 룸(기차역안 간이 숙소다)을 빌렸다. 다음날 아침 오전 7시를 넘기고도 도착하지 않은 기차는 9시, 11시까지 미뤄지더니 결국 오후 1시에 플랫폼에 들어온다. 12시간의 연착이었다. 그래도 짜증같은 건 나지 않는다. 여기는 바라나시이니까......"Are you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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