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나트......부처님이 득도 후 최초로 설법한 곳으로서 룸비니(탄생), 부다가야(득도), 쿠쉬나가르(입적)와 더불어 불교 4대 성지중 한 곳이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 북쪽 6km 지점에 있어, 버스로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사르나트 유적의 다메크탑, 출처: katsuyoshi.org>
유적지는 거의 황폐화되어 있었다. 건물이 있었던 듯, 남아있는 기단과 굽타시대의 다메크탑이 남아 있었다. 싯다르타는 득도 후 여기에 와서 5명의 비구에게 최초로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파했으며, 거기엔 사슴들도 있었다고 한다.(이 곳의 원래 명칭이 녹야원, 즉 사슴동산이다) 여기 남아 있는 유적들은 석가시대의 것은 아니고, 그 이후 아소카왕과 굽타왕조 등 기원전 3세기에서 12세기까지의 유구들이다. 그 중에서도 거의 원형대로 보존된 다메크탑은 높이 42m, 하단부 지름 28m이며, 이후 인도지역에 건설된 스투파들의 원형이 된 탑이기도 하다.
<다메크탑을 배경으로 동네 꼬마와 함께>
<유적지에 남아있는 석주>
사실 볼만한 게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쉬엄쉬엄 둘러보다가 근처에 세워진 한국절 '녹야원'으로 향했다. 유적지 부근에는 세계 각국에서 세운 절들이 많았는데, 우리나라 절은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안 계시고 네팔수도승만 우리를(사르나트 여행은 바라나시에서 만난 2명의 대구아가씨들과 함께 했다.) 반겼다. 우리는 물을 한 잔 얻어 먹고, 보시를 한 다음 바라나시로 되돌아왔다.
<한국절, 녹야원에서>
석가가 얻은 깨달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명을 죽이지 말고, 자비를 베풀며, 욕심내지 말라는 것은 어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또한 그건 생활의 계율이자 몸과 마음가짐을 단정히 하기 위한 방법이지, 그것 자체가 깨달은 바가 될 수는 없다.(고작 그거 말하려고 6년간이나 고행했다면 정말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진짜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을 깨달았다는 말인가? 누군가 얘기하는 것처럼, 보다 고차원적인 영적 에너지를 체득하는 것이거나 고래로부터 전수된 지혜를 전수받는 입문을 표현한 말일까?
고차원적인 영적 에너지는 다른 말로 靈智, 혹은 그노시스(Gnosis)라 불린다. 동양에선 고행과 자기극복, 명상과 특별한 호흡법을 통해 각자의 마음 안에서 끌어올린 잠재능력을 통상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신교가 지배해온 서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믿음이 존재했다. 세속화되고 권력화된 카톨릭에 맞서 예수를 물질적 세계(야훼로 대표되는 질투의 신이 지배하는 육신을 포함한 현재의 세상)에 갇힌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정신적 세계의 현신으로 해석하며 개개인이 영적 존재로 재탄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불교교리와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그노시스파가 등장한 이래, 이단으로 규정되면서도 알비파, 카타리파, 보고밀파 등 밀교의 형태로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것이다.(성서에는 예수의 12세부터 30살까지의 기록이 전무한데, 그는 이 시기 사막에서 고행을 하며 또는 인도를 방문해 득도를 했다고도 전해진다. 예수가 행한 기적은 그러한 에너지가 사용된 몇 사례일 뿐이라고도 본다) '세상의 모든 시험을 이겨낸 자'라는 뜻의 '그리스도'는 흔히 '깨달은 자'라고 불리는 '붓다'라는 명칭과 유사해보이기까지 한다.(유사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끝이 없다. 12월25일에 처녀에게서 태어나 3명의 왕에게 경배를 받고, 12명의 제자를 두며,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죽었다가 부활한 성인은 이집트 호루스를 비롯해 조로아스터, 마니, 페르세우스, 크리슈나 등 역사상 50여명에 이른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는 진짜 '예수'가 아닌 이미지화된 '예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이건 다음 기회에 다시 생각키로 하자!)
어쨋든 제3의 눈을 뜨고 싶은 자들은 바로 그 '시험'을 거쳐야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나, 소수의 선택된 자들에게 전달되어 온 고대의 지혜(秘儀)를 얻기 위한 일종의 입문의식, 통과의례라 보기도 한다. 단계별로 주어진 고행을 극복하고, 죽음과 부활의 의식을 경험해야 하는 의식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해 현대의 프리메이슨에 이르기까지 비밀리에 공유되어 왔다.(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주인공 타미노와 파미노가 불의 시련을 거쳐 빛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는 내용은 프리메이슨이었던 모짜르트가 그 교리를 담은 것이라 알려졌다.) 실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저 파리에서 야고보의 무덤에 이르는 단순한 순례길이 아니라, 비밀종교결사체(템플기사단으로 상정되는)의 단계별 입문의식이 이루어지는 각 지점(성당)들을 연결한 깨달음의 경로를 의미한다. 물론 그 경로를 다 거쳤다고 모두가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입문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결국 자신의 노력과 고행을 통해 제3의 눈을 떠야 하고, 그렇게 깨달은 자가 된 성인은 세상의 참된 지혜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을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지혜와 깨달음을 감당할 수 없는 다수의 일반 대중들에게는 어설프게 알게 되는 비의가 혼란과 독이 될 수도 있다. 그게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성직자와 교리와 제례 중심으로 세속화, 권력화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성인(선지자)들이 우상화되는 것도......생각해보라! 사람들은 절(혹은 교회)에 가서 열심히 절(기도)을 하며 고작 하는 것이라곤 열심히 믿을 테니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라고 빈다. 부처나 예수가 무슨 흥신소 직원도 아닌데 말이다. 성직자들은 기껏해야 처세술이나 인생상담소에서 들을 법한 것들을 불경 혹은 성서의 이야기에 담아 그럴 듯하게 풀어내고, 교회는 인맥형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교클럽처럼 운영된다. 누구도 실제 부처나 예수가 '깨달음' 혹은 '시험을 이겨내는' 것이 진실로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여전히 내가 목마른 이유다.
(1.17일 사르나트에서 횡설수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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