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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38) 나의세계건축답사기(5) - 글래스고우 예술학교

budsmile 2012. 10. 5. 13:06

 

 

글래스고우 예술학교......설계자는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1896년 설계공모를 거쳐 완성된 20세기 초 아르누보 계열의 건축물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이라는 시리즈가 한동안 유행했었는데.....어쨋든 그 시리즈 중 건축물 1001개에 하나로 들어가 있다.

 

그걸 떠나서, 이 건축물은 건축의 변방, 영국에까지 아르누보가 전파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보여주는 건물로 남아 있다. 아르누보는 사실 대륙의 문화운동이었다. 오스트리아(올브리히, 오토 바그너, 구스타프 클림트 등)에서 태동한 아르누보는 회화, 조각, 건축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운동으로서, 벨기에(빅터 오르타, 앙리 반데벨데 등), 프랑스(헥토 기마르), 스페인(안토니오 가우디) 등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새로운 미술'이라는 프랑스어로서 독일에서는 유겐트 스틸,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세션(분리파)으로 불리우는 사조다.

 

20세기 초 기존의 석재에서 새로운 건축재료인 철과 유리가 등장하면서 건축가들은 일대 혼란이 벌어지게 된다. 당시의 일부 건축가들은 철과 유리를 예전 석재처럼 육중한 모습의 기둥으로 번안해 사용하는 일이 흔했는데(마치 콘크리트로 한옥을 흉내내는 것과 똑같다), 가소성이 풍부하고 강도가 높은 이 재료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분명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또한 산업혁명이 급속히 진행되고 공장에서 찍어낸 조잡한 복제품들이 넘쳐나면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다. 그러한 시대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아르누보다. 새로운 재료에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입히되, 이는 반드시 사람이 직접 만드는 수공예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일군의 새로운 예술가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철을 구부려 담쟁이 넝쿨 모양의 곡선을 만들어 사용하고 유리를 이용해 반투명 공간을 창조해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러한 공간은 결국 장식주의로 흐르면서 새로운 합리성을 얻어내지 못해 단명하고 말았다. 하지만 재료에 대한 여러가지 실험들은 후대에 다양한 아방가르드들(표현주의, 구조주의, 입체파 등)을 거쳐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길을 터줬으니, 하나의 과도기적인 운동으로서의 가치 평가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사암과 유리, 철로 이루어진 기존의 전통적 어휘를 탈피한 파사드>

 

매킨토시는 윌리엄 모리스 이래 영국인들에게 면면히 흐르는 수공예 장인정신의 기질과 대륙의 아르누보 양식을 받아들여 이 건물을 완성한다. 외관은 당시 스코틀랜드의 전통규범을 따라 사암을 사용하되, 유리와 철제를 적절히 섞되, 그 규범을 살짝 비트는 조심스러움을 드러낸다.

 

<입구에 서다>

 

에딘버러에서 글래스고우까지는 기차로 약 2시간......한여름이었지만 우중충한 날씨가 과연 스코틀랜드답다. 내 배낭여행의 초점은 항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맞춰져 있었고, 그 중에서도 관심이 특히 많은 고대 유물에 일정이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전 서양건축사 수업시간에서 배웠던 건축물이 있다는 걸 알면, 특별히 바쁘지 않는 한 들렀다. 글래스고우 예술학교도 그렇게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내부까지 보게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어렵사리 위치를 확인해 갔는데, 마침 내부 투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간이 맞아 합류하게 되었다. 정말 행운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운영하는 투어였다.

 

<입면 디테일, 창틀에서 아르누보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입면 디테일-2>

 

<매킨토시 기념동판>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바로 나무로 짜여진 계단이다. 일본풍의 계단은 아르누보 시대, 일본의 회화와 건축양식이 서구에 끼친 많은 영향을 보여준다. 일본 에도시대의 풍속화인 '우키에요'는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사실적인 그림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상징화하여 과장하거나 생략하되, 서정적이면서도 다채로운 색채, 과감하게 단순화된 외곽선과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 디자인이 고흐나 모네같은 인상파 화가들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로부터 광범위하게 일본풍 문화가 도입되는데, 매킨토시도 일본의 심플하면서도 단정한 디자인과 자연적 소재에 맘이 끌렸나보다. 일본풍의 계단실은 위쪽에 놓여진 '사모트라케의 니케' 조각상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계단실 전경>

 

<계단실 천장을 올려다보다....천창을 통해 끌어들인 자연광>

 

<2층에 올라서서 계단실 아래를 내려다보다>

 

2층에 있는 교장실로 들어갔다. 스코틀랜드의 검소한 분위기가 반영된 미니멀한 공간이다. 별로 특별한 것같지도 않은 공간은, 그러나 전면 유리창을 통해 빛을 한아름 받아들이며 어두컴컴한 중세 건물과는 사뭇 다른 근대적 정신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정신은 방 곳곳에 설치된 가구와 전등을 통해 아르누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모든 가구와 장식, 전등갓은 모두 매킨토시의 작품이다.

 

<교장실의 모습>

 

<교장실의 전면창>

 

<교장실의 벽난로>

 

<교장실의 책서고함>

 

<가구 디테일-1>

 

<가구 디테일-2>

 

<가구 디테일-3>

 

<교장실의 의자>

 

교장실 옆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책이 잔뜩 쌓인 복층 형식의 도서관이 있었다. 역시 일본풍의 가구식 구조와 아르누보 특유의 장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공간이었다.

 

<도서관 내부>

 

<도서관 내부의 전등과 인테리어>

 

<수많은 방들 중 하나였는데....나무와 철을 이용한 특이한 천장구성이 독특했다>

 

<콘크리트를 이용한 계단실의 모습>

 

3층에는 천장이 높은 다양한 작업실들이 많다. 특히나 외기와 접하고 있어 천창이나 전면창을 넓게 설치해 자연광을 적극 끌어들이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천장에 창을 뚫는 것은 석조로 된 건축물에서는 구조적으로 꽤 큰 모험이다. 로마의 판테온 이후 천창은 콘크리트와 유리라는 재료가 나오고 나서야 활성화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실내공간을 균질화시키며 실내외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이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트러스로 짜인 작업실의 천창>

 

<빛과 어둠의 극명한 조화.....그리고 반투명한 공간>

 

<격자화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경관>

 

<또다른 작업실에 설치된 창.....창의 모듈과 형태, 크기가 방마다 모두 제각각임을 알 수 있다>

 

<유리창 너머로 건물의 또다른 입면을 감상하다>

 

<마치 유리온실같은 공간......>

 

3층의 빛이 가득한 공간을 돌아다니고 있자니, 마치 현대의 건축물들을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지금의 건물들은 바로 20세기초 이들이 새로운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건축어휘로 번안해 낸 건축물의 컨셉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지난 100년동안의 건축양식은 아르누보 이후의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빛을 통해 고전 양식의 새로운 버전쯤으로 읽히는 작업공간>

 

<또다른 작업실의 내부......꼬르뷔제의 출현을 예고하는 듯한 공간>

 

<작업실의 전등 역시 모두 매킨토시의 디자인이다>

 

<또다른 전등갓 디자인>

 

오래된 서고에서 우연히 귀한 고서를 발견한 것만 같은, 이 건축물은 우연히 마주친 보석같은 존재였다. 차분한 느낌의 인테리어, 아르누보에서 근대건축에 한 걸음 더 다가선 듯한 디자인,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과 짧은 시간 내부 투어를 함께 했던 건축에 관심많은 유쾌한 영국인들 덕분이다.....기대 이상으로 흡족했던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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