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샹(Ronchamp) 성당......근대건축의 4거장 중 한명인 르꼬르뷔지에의 대표적인 후기작이다. 입방체의 인터내셔널리즘을 창안해낸 꼬르뷔지에가 말년에 토속적인 비정형성과 재료의 거친 속성을 드러내는 브루탈리즘을 과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1950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기존의 성당 자리에 작품을 의뢰받은 그는, 작품의 창의성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서야 설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까지 간 다음 벨포르(Belfort)에서 기차를 다시 갈아타고 롱샹까지 간다. 롱샹까지는 기차편이 많이 있질 않아 미리 시간을 확인해보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숙박할 곳이 없을 만큼 롱샹은 작은 시골동네다. 그렇게 도착한 롱샹에서 성당까지 도보로 20분 정도를 걸었다. 마침 정오가 가까워오면서 햇빛이 강렬하게 성당에 내리 꽂을 때 도착했다. 하얀색의 이 괴상한 건축물은 책에서 봐왔던 대로 묘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나를 반긴다.
남측면에는 다양한 형태의 창문이 뚫려져 있다. 파사드를 중시 여긴 서양의 건축사조에서 보자면, 이 건물은 완전 파격적이다. 양식사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콘크리트 덩어리......그리고 그 위에는 역시 거친면으로 마감된 콘크리트 지붕이 돌돌 말려 얹혀져 있다. 그러다보니 건축물의 생김새가 꽤나 독특하다. 건축물 해설서에 따르면 게껍질, 항해하는 선박, 오리, 기도를 위해 모은 두 손, 심지어 귀두와 같은 성적인 느낌까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갖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형상을 지녔다고 적고 있다.
그가 이 성당에서 강조한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빛'이다. 빛이 만드는 조각, 빛이 만드는 실내, 빛이 만드는 성스러움, 빛이 만드는 입체......빛은 여기서 재료의 처음이자 시작이다. 콘크리트는 빛을 형상화하고 빛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적의 보조물이다. 그래서 이 건물엔 장식이 하나도 없다. 장식과 양식과 아우라는 모두 빛이 대신하고 있다. 빛을 잘 요리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여기서 감명을 받아 건축의 길로 인도되었다는 것은 이제 진부한 일화다.
북측면에는 야외에서 미사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여기가 순례자 성당임을 감안한다면, 건축주가 요구한 또 하나의 기능이었을 것이다.
각도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인다. 야외 예배당의 모습
탑 처럼 솟아있는 저것은 소규모 채플예배당의 천장부분이다. 나중에 실내에서 확인되겠지만, 빛을 끌어드리는 장치를 조형화한 것이다. 마치 파키스탄이나 튀니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통풍시설처럼 말이다.(실제 르꼬르뷔지에는 북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비슷한 구조물을 스케치한 적도 있다.)
지붕은 가운데로 빗물을 모으도록 되어 있다. 그 빗물은 저 코끼리 코처럼 생긴 관을 타고 아래 저장소로 보내진다. 물이 귀한 이 곳에서 자연에 순응코자 한 꼬르뷔제의 생각이 잘 읽혀지는 구조물이다. 또한 기능과 형태와 설비가 하나로 일체화된 구조물이기도 하다.
이제 내부로 들어가본다. 그야말로 빛의 바다다. 남측의 2.7m 두께인 육중한 벽에 뚫어놓은 창문들은 그 크기와 각도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여기서 한꺼번에 다혈질적으로 쏟아지는 빛들은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성스러움으로 실내를 열광시킨다. 거기에 간단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입혀 채색된 빛들은 다듬어진 개성으로 눈을 현혹시킨다.
실내에서 주목되는 처리 중 하나는 바로 벽과 천장 사이의 저 틈새다. 만일 벽과 천장을 일체로 타설했다면 느껴졌을 무겁고 육중한 공간의 위압감이 저절로 해소된다. 천장은 콘트라스트로 더욱 어둡게 보이지만, 틈새로 새어나오는 빛으로 인해 천장 전체가 가볍게 들어올려진 느낌이다.
앞서 말한대로, 이 조그만 성당에도 3개의 소규모 채플예배당이 있다. 각각은 말굽형으로 말린 벽으로 구획되어 있는데, 그 안에 시설은 조그마한 연단이 전부다. 하지만 그 공간은 위에서 쏟아지는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빛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꼬르뷔제는 연단 뒤 벽면의 표면을 까칠까칠하게 만들어 음영을 만들어냈다. 빛은 형체도 부피도 없는 물질이라, 그것을 느끼게 하려면 이러한 장치가 필요한 법이다. 마치 스페인 똘레도 성당에 있는 태피스트리(빛이 쏟아지는 천창 밑으로 뒤엉킨 아기천사들을 배치해 빛이 흘러내리도록 고안한 벽면)의 현대판 버전이라고나 할까? 장식이라곤 하나 없는 공간에 빛만으로 불러들인 신성함이라......
위를 올려다보니 빛은 저기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채플 3개중 하나는 붉은 색 유리를 썼는지 온통 붉은 빛의 우물이다......
돌아가는 길, 역도 역무원도 없는 롱샹역에 있는 벤치 주변에 어지러히 적힌 낙서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 편의 멋진 작품을 감상한 후의 포만감을 가슴에 담고 또다른 곳에서 르꼬르뷔제와 만나길 기대하며 또다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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