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다. 시 외곽에 있는 간덴사원으로 가는 버스가 조캉사원앞 바코르에서 6시반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한여름이지만 티벳의 새벽은 초겨울날씨다. 부랴부랴 서둘러 갔지만 이미 버스는 라마승들과 순례객들로 꽉 차 있었다. 다행히 비어있는 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곧바로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내가 묵은 숙소는 5인 1실인데 어제저녁 나를 제외한 모든 침대가 중국인들로 채워졌다. 그런데 애네들, 완전 안하무인이다. 다른사람이 있건말건 새벽 2시까지 시끄럽게 떠들며 웃고, 노름판까지 벌이는데 정말 가관이다. 나라는 클 지 몰라도 아직 대국다운 면모를 갖추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하다.
1시간 반정도 잤을까? 차가 많이 흔들리기에 일어났더니 버스는 가파른 산길을 지그재그로 올라가고 있었다.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을 것같은 산등성이를 올라가는데, 저 멀리 티벳고원의 웅장한 대자연이 발아래 펼쳐진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산 꼭대기 부근에 드디어 사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저차에 맞춰 적절히 분산된 사원들은 티벳불교의 중흥을 이끈, 겔룩파의 거두 총카파가 건설한 간덴신전이다.
버스가 주차장에 들어서자 동이트기 시작한다. 아직도 이빨이 부딪힐 정도로 춥다. 정류장 부근 식당에 들어가 따뜻한 야크버터차를 한 잔 주문했다. 특유의 느끼한 냄새가 이젠 향기롭게 느껴진다. 버스 안에서 봤던 동양인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와세다 법대 학생이란다. 중국말도 좀 할 줄 알고, 정류장 안까지 들어온 걸인들에게 적선도 베푸는 걸 보며, 심성이 착한 것같아 오늘 일정을 같이 동행키로 한다.
해가 뜨고 공기가 따스해지자 밖으로 나와 사원에 들어가본다.
사원은 평지가 아닌 탓에 마치 미로와 같은 복잡한 구조를 보인다. 같은 건물인데도 입구가 층별로 틀리고 내부도 복잡하다. 이곳저곳 법당을 기웃거리다가 제법 큰 법당 옥상에 오르자 따스한 햇빛에 그만 녹아버렸다. 선선한 바람마저 부니 잠이 절로 온다. 어제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고산병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옆을 보니, 와세다 법대생도 별 수 없나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옥상에 각자의 침낭을 펴고 누워 배낭을 베개삼아 꿀맛같은 잠을 청했다.
티벳에서는 독특한 장례풍습인 조장이 있다. 시체를 독수리가 뜯어먹도록 하는 것인데 자칫 야만스럽게 보이는 이 풍습은 사실 이들이 처한 자연환경이 만들어준 당연한 결과다. 땅을 파서 매장하는 방법은 얼어붙은 척박한 땅에서는 당연 어려울 것이며, 인도식 화장도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티벳을 생각한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대신 이들은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독수리에게 천상과 지상의 매개 전령이란 역할을 부여하고 이들을 통해 승천의 꿈을 투사했으리라......
간덴사원은 조장이 이루어지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날은 보지 못했지만 저 바위 투성이의 산에서 사람들은 더 나은 내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독수리에 맡겼으리라......
참 특이한 구조다. 조적조로 이루어진 건물안에 목조 건물이 들어가 있다. 주변은 파내어 마당을 만들었는데, 마치 르꼬르뷔지에의 평지붕 건물을 보는 것만큼이나 다채롭다.
중요한 건물의 지붕은 황금색으로 되어 있어 한 눈에 알 수 있다. 역시 주변의 단순한 건물에 비해 장식도 더 섬세하게 처리되어 있다. 조적식의 벽을 목조처럼 장식한 것도 특이하다.
비례감각이나 균형미도 놀라울 정도로 세련됐다. 시공을 초월해 미를 감각하는 눈은 별 차이가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절'과는 공간구성 방법이 많이 다르다. 티벳의 사원들은 Temple보다는 Manastery(수도원)에 더 가까운 탓에 각 공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이 공간단위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완결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이 때문에 경내에는 다수의 본당이 존재하고 이들은 마치 중세의 성(castle)과 같이 견고하게 감싸인 것처럼 보인다.
티벳 특유의 지붕 장식들......
우리에게도 익숙한 목조에서 쓰이는 가구식 공포형태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모습은 이 곳이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바퀴 둘러보고는 서둘러 아침에 들렀던 정류장 옆 식당으로 되돌아갔다. 기압을 견디지 못한 뇌가 두개골을 뚫고 나와버릴 것같은 아픔에 더는 이길 자신이 없었다. 기운없이 앉아있는 나에게 옆자리의 티벳 아줌마는 고산병에 좋다며 나에게 자꾸 차와 먹을거리를 건넨다. 정다운 인심이 눈물겹다. 그러나 나는 감사하다는 말도 할 힘이 없어 그저 눈만 꿈뻑거릴 뿐이다.
설상가상....아침에 먹었던 야크버터차를 피곤한 내 몸이 받아들이길 거부했나보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같았다. 급하게 들어간 화장실...아뿔싸...칸막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바닥에 구멍만 20여개 뚫어져 있는 전형적인 중국식 화장실이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중국인 한 명이 힘겹게 볼 일을 보고 있다가 화들짝 놀랜다. 급한데 부끄러움과 체면이 무슨 소용이랴......그 옆에 엉덩이를 까고 나도 힘차게 볼 일을 본다.
라사로 돌아오는 길......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 나는 하릴없이 잠만 청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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