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병으로 인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같았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는 침낭 속에 있는 몸조차도 뻣뻣하게 만든다. 9시경 간신히 일어나 단골 식당에서 쌀죽을 좀 뜨고 나니 기운이 난다. 천천히 포탈라궁까지 걸어가본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다.
원래 포탈라궁 앞에는 이러한 광장이 없었다고 한다. 이곳을 점령한 중국 공산군은 천안문광장같은 국가상징장소를 조성하고 집회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이곳에 있던 민가를 밀어버린 것이다.(사실 천안문광장도 같은 이유로 만들어진 장소다.) 덕분에 사진찍기는 좋지만, 포탈라궁이 더 위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변질되 버린 것같아 씁쓸하다.
포탈라궁은 겉에서 보기에 13층의 대건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9층인데, 이는 착시현상이다. 티벳은 경사지를 이용해 여러 동의 건물을 지어 멀리서보면 이들이 마치 하나의 건물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포탈라궁은 백궁과 홍궁으로 나뉜다. 백궁은 달라이라마가 집무를 보던 정치의 중심공간, 홍궁은 종교공간이다.
포탈라궁 앞에는 약왕산이라는 조그만 야산이 있다. 여기에 올라가면 조캉사원에서와는 또다른 포탈라궁의 멋진 전경을 담을 수 있다. 마침 향까지 피워져 있어 신비한 느낌이 더한다.
포탈라궁에 오르는 길은 좌측 후문에서부터 시작한다. 가파른 경사길을 5분 정도, 거대한 수직의 건물벽을 보면서 올라간다. 문을 열자마자 들어섰는데, 역시 관광객들이 별로 없어 좋았다. 바람소리만이 이 주인없는 건물을 보호하고 있는 듯하다.
올라가는 길에는 티벳특유의 오색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천에는 불교경전이 적혀있어 바람따라 티벳 전역에 부처님 말씀이 퍼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입구안으로 들어서면 백궁이 먼저 반긴다. 불행히도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다. 내부는 좁은 복도로 이어진 방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는데 집무실, 불상, 만다라 등으로 가득하다. 손전등을 켜고 돌아다니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어둡다. 이 곳에서 어렸을 때부터 갇혀 지내야 하는 달라이라마에게 이곳은 학교이자, 집이자, 직장이자, 놀이터였을 것이다.
이 곳이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다. 백궁의 중심건물인데,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사실 그 영화는 티벳에서의 촬영이 불허되면서 셋트촬영이 이루어졌는데 포탈라궁을 완벽히 재현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부는 바람도 잔잔하고 햇볕도 따스하다. 중국의 비이성적 문화혁명 시기 티벳전역의 6000여 사원을 파괴한 홍위병들이 이 포탈라궁을 파괴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같은 일이었다. 중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주은래가 사병을 풀어 이 궁의 파괴를 막은 것이다. 집단적 광기가 사회를 마비시키는 시기에, 누군가는 그렇게 용감했고 그래서 이 인류문화유산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티벳인들이 지켜내지 못한 티벳문화유산, 그리고 그 점령자들에 의해 돈버는 놀이시설로 변해버린 성지는 티벳인들에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내부 관람을 모두 마치고 나오면 옥상에 올라서게 된다. 저 멀리 티벳공원의 준령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저층의 낮은 건물이 깔린 라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포탈라궁 아래쪽에는 흉가처럼 방치된 건물들이 꽤 있다. 궁 내부의 건물들인데, 비서실과 같은 예전 관리부서 영역이었을 것이다.
나오는 출구는 건물 정문이다. 라사 시내가 한 눈에 굽어보인다.
천상으로 향하는 기다란 계단이 비현실적으로 놓여있다.
포탈라궁 뒷편에는 연못이 있다. 용왕담이라 불리는데, 그 호수에 비친 포탈라궁의 모습이 이채롭다. 호수 주변엔 버드나무가 무성하고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항상 순례자들로 가득찬 위엄있는 정면과는 달리 사뭇 속세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러고보니 포탈라궁이 위치한 이 곳은 천혜의 자연요새란 생각이 든다. 원래 홍산이라는 야산(해발로 치면 3,600m이니 백두산보다 높긴하다.)에 지어진 궁은 641년 송첸캄포가 처음으로 지은 궁전이 여러 세대에 걸치면서 증축된 결과이다. 송첸캄포는 티벳(우리가 흔히 '토번국'으로 알고 있는)을 최초로 통일한 왕으로 당시 당나라 현종의 딸 문성공주와 정략결혼을 하면서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몽골지배하에서 달라이라마 제도가 확립되면서 포탈라궁은 겔룩파의 수장이자 살아있는 관음보살인 달라이라마가 계속 환생하며 거주하는 '천상의 공간'이 되었다.
현재의 달라이라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벳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라마14세 '텐진 가초'이다. 중원 장악 이후 티벳에 대한 영토야욕을 드러낸 중국공산당이 사실상 라사를 접수하고 그 마지막 단계로 달라이라마를 구금하려한다는 소문이 라사에 퍼지자 그를 보호하기 위해 모인 티벳인들의 도움으로 인도에 망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은 티벳인들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는 잔인했다.(그 과정은 마치 조선왕조를 천천히 장악해간 제국주의 일본의 모습과 흡사하다. 또 티벳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는 과정은 지금의 동북공정과도 매우 유사하다.)
아무튼 달라이라마는 그 이후 중국의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혔다. 그를 초빙하는 국가는 중국과의 외교마찰도 각오해야 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그와의 대화를 꺼려한다. 티벳에서 그의 사진을 가지거나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철저히 금기시되어 있다. (중국은 침묵속에서 마치 달라이라마의 죽음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같은 느낌이다.) 아~ 티벳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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