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섬...남태평양에 있는 외딴 섬으로 칠레령이다. 여기 가는 방법은 유일하게 취항하는 란칠레 항공을 타는 것이다. 비행기는 타히티행으로 산티아고를 이륙해 4시간 40분 걸려 스탑바이 형식으로 잠시 착륙한다. 주변에 다른 섬이 없어 말 그대로 절해고도다.
수평선만 보이다가 마술처럼 갑자기 나타난 섬은 끝에서 끝이 보일 정도로 아담했다. 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 산등성이의 부드러운 곡선이 섬 전체에 자리잡고 있어 거의 평탄한 느낌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달려든 인상좋은 아줌마와 숙소를 흥정하고 여장을 풀었다. 풀벌레 소리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섬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 이스터섬에 왔구나....
다음날 아침 섬 안의 모든 닭들이 일제히 울어대는 통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침공기는 차갑지만 무척 상쾌하다. 풀냄새, 꽃냄새, 이슬냄새, 바다냄새.....!!!
섬안을 둘러보기 위해 70달러하는 이틀짜리 투어를 신청했다. 낮에는 더운데다 그늘이 거의 없는 곳이라 도보나 자전거로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여기선 모아이를 많이 보기 위한 것이 목적이니까......
나를 포함해 영국인 부부 등 다섯명이 승합차를 타고 나섰다. 먼저 섬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항가로아(Hanga Roa)의 슈퍼에서 물과 빵을 산 후(모든 게 칠레에서 수입되다보니 가격이 무척 세다)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아후 바이후(Ahu Vaihu)란 곳에 도착했다. (아후 'ahu'는 돌로 쌓은 석단을 의미한다.)
섬의 모습은 제주도와 비슷하다. 부드러운 언덕과 화산폭발로 생긴 구덩이들, 널따란 초원과 뛰노는 말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쌓은 낮은 돌담과 하루방 대신 서 있는 모아이들.....처음 밟는 땅이었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다.
가만 보니 바위들이 아니라 쓰러진 모아이들이다. 섬에는 약 천여기의 모아이가 있다는데 대부분은 이렇게 쓰러져있다고 한다. 1862년 12월 페루의 노예선단이 섬에 처음 상륙해 인구의 10%인 1000여명을 노예로 잡아갔고 외지인이 퍼뜨린 천연두가 섬을 휩쓰면서 인구가 600명으로 줄어들었는데, 이 때 이스터섬의 문자인 '롱고롱고'를 해독할 수 있는 엘리트집단이 사라졌다고 한다. 따라서 이 섬의 역사는 추론만 가능한데, 쓰러진 모아이들은 모아이를 숭배하던 지배계급이 鳥人(새인간)을 숭배하던 새로운 세력에 멸망당한 흔적으로 보고 있다.
가이드는 여러 가지 장황한 설명을 해줬는데, 들으면서 특이할 만한 점은 원주민들의 일본인들에 대한 반감이었다. 어딜가도 일본어 안내가 가능한 것을 보면 일본인들이 많이 찾아오긴 하는 모양인데 사고도 많이 쳤다보다. 넘어진 모아이 앞에는 제사의식에 사용되었을 신성한 공간이 원형으로 남아 있다. 여기는 아후 바이후에서 더 동쪽에 있는 아후 아카항가(Ahu Akahanga)이다.
원주민들은 이들을 세우기 위해 섬의 나무를 베어 사용했고 덕분에 나무가 없는 섬은 자연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됨으로서 모아이 숭배계급의 몰락을 자초했다고들 이야기한다.
앞의 사진은 그래도 온전한 형태로 넘어져있으나 머리와 몸통이 따로 놀고 있는 폐허같은 잔해들도 많다.
희한한 것은 이스터섬(정식 명칭을 Isla de pascua, 원주민들은 라파누이Rapa Nui라 부른다.)의 모아이들은 육지쪽을 바라보며 해변가에 서있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이스터섬의 동쪽 끝부분에 가면 라노 라라쿠(Rano Raraku)라는 사화산이 있다. 여기는 모아이의 조각공원과도 같은 채석장이다. 산 위에는 모아이를 뜯어낸 흔적들이 한 눈에 보이고, 그 바로 아래엔 지면에서 솟아난 듯 반쯤 땅에 잠긴 모아이들이 제 멋대로 멋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산 아래 올록볼록 서 있는 바위들이 모두 모아이들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기괴한 형상들은 일종의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여기서 갑자기 왜 경주남산과 화순 운주사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갈수록 바위로 이루어진 벽이나 땅에는 조각을 하고도 미처 파내지 못한 모아이들로 가득하다. 아니, 처음부터 파낼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무엇에 홀린듯, 굉장한 집념으로 이 산 전체를 모아이로 가득 채운 것만 같다.
가만 보면 모아이들의 형상은 모두 제각각이다. 큰 귀와 오똑한 코, 푹 꺼진 눈과 기다란 얼굴은 기본 형상이지만, 그 각각이 주는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넘어져 있는 것도 제각각이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전설에 따르면 모아이가 완성되는 순간, 모아이가 살아나 자신이 서야할 곳에 직접 걸어갔다고 한다.
이스터섬의 곳곳을 안내해준 원주민 가이드와 사진을 찍었다. 이 곳 사람들은 폴리네시아인이라 한다. 폴리네시아는 뉴질랜드와 하와이 그리고 이스터섬을 연결하는 지역을 일컫는다. 학자들 중에는 폴리네시아인이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과는 전혀 다른 DNA를 가지고 있어 제4의 인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를 확대해 태평양에 있다 사라진 거대한 뮤대륙의 후손들이 아니냐 하기도 하고 모아이가 뮤대륙의 흔적이라 하기도 한다. 그만큼 모아이는 세워진 이력에 대해 불가사의한 점이 많다.
모아이의 특징 중 하나는 귀가 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 원주민들과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아마 도구를 사용해 귀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녔던 족속들(長耳族)이 지배계급으로서 군림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섬은 참 황량하다. 저 멀리 자동차 도로가 보이고 그늘이라곤 전혀 없다. 그러나 지질조사를 통한 연구결과엔 이 섬이 과거엔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었다고 한다. 모아이를 세우느라 숲을 파괴했다거나, 원주민들이 지배계급(장이족)에 대한 반란과정에서 숲이 불탔다거나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어쨋든 숲의 파괴는 이 섬에 환경재앙을 가져왔다. 배를 만들 수 없으니 고기잡이나 다른 섬으로의 탈출(가장 가까운 인근 섬과도 무려 2,000km 이상이 떨어져 있다.)이 불가능했을 터였고 늘어난 인구와 부족한 식량은 부족간의 전쟁과 식인풍습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냥 바위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숨은그림 찾기 처럼 곳곳에 모아이가 숨어 있다.
모아이 2개가 서로 엇갈리게 누워있다.
약 20m가 넘는 길이로 일으켜 세웠다면 섬에서 제일 큰 놈이었을 거라 한 모아이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화산폭발로 생긴 분화구(칼데라호)가 보인다. 자세히보면 칼데라호를 향한 경사지에도 모아이 몇 개가 세워져 있다. 분화구 바깥쪽과 마찬가지로 동쪽에만 모아이들이 있는데 아마 어떤 신앙을 상징한 듯하다.
라노 라라쿠 바로 옆 해안에는 최대의 모아이군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가 있다. 모두 5개의 모아이가 키도 몸집도 제각각인 채로 열지어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게다가 높은 플랫폼위에 얹혀져 있어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해 보인다.
섬 안에 유일한 여성 모아이라고 한다. 아후 통가리키 유적지와 약간 떨어져 세워졌다.
이 곳의 모아이들은 표정들이 아주 근엄하고 무뚝뚝해보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열병식을 하는 군인들처럼 진지해보이기도 한다. 이 석상들은 원래 쓰러져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일본에서 크레인을 공수해와 다시 세워줬다고 한다.
모아이의 등 뒤에는 롱고롱고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제 그 뜻이 무엇인지 해독할 수 있는 이는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이제 차를 북쪽으로 돌려 한참을 달리니 멋진 해변이 나온다. 이제야 남태평양에 온 느낌이 확 난다. 멋진 백사장과 야자수가 있는 이 곳에서 닭꼬치로 점심을 때우며 해수욕을 잠깐 즐겼다. 사실 이스터섬은 백사장이 두 군데 뿐이다. 이 아나케나 해변 백사장에 모자를 쓴 4개의 모아이가 돋보이는 아후 나우나우(Ahu NauNau)가 있다.
붉은 모자는 '푸카오'라 하는데, 붉은 색 응회암으로 만들어진 무게 12톤의 돌덩어리이다. 비교적 후기에 만들어진 모아이들에서 발견되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100개가 채 되지 않는다 한다. 그런데 10m 높이의 모아이 머리에 저 돌을 어떻게 올렸을까?
모아이 뒤편과 기단부에는 역시 다양한 형태의 그림이 그려져있다.
이제 다음 목적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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