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공중에 걸린 돌'이란 명칭을 가진 이 유적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하나의 환상으로 잠재되어 있었다.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떠한 기록이나 증거도 없는 유적......내가 고대유적에 관심을 가지게 시초였고, 영국에 가게 되면 꼭 방문할 1순위였다. 하지만 처음으로 떠난 배낭여행에서 방문에 실패했고, 5년 뒤 두 번째 배낭여행으로 영국을 방문했을 때 드디어 내 눈으로 직접 유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주변에 울타리를 쳐 놓아 손으로 만져볼 수는 없었지만, 그 때의 그 감흥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멀쩡하던 하늘이 금새 먹구름으로 뒤덮여 폭우와 같은 소나기가 퍼부었던 기억조차 신비감으로 다가온다.
유적은 다른 고대 거석유적에 비하면 그리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산도 없는, 오로지 잔듸밭만 사방팔방 펼쳐진 지평선(솔즈베리평원) 한가운데 건설된 스톤헨지는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강한 힘이 느껴진다. 스톤헨지는 그 비밀의 역사만큼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언뜻 얼토당토 않는 이야깃거리들도 있지만, 그 조차도 스톤헨지의 스토리텔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중 대표적인 다섯가지를 뽑아본다.
1. 스톤헨지는 화성문명도래설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1976년 미국의 화성탐사선 바이킹이 화성표면을 촬영한 사진 중에 지금도 논란거리인 '인면암'이 있다. 나사(NASA)에서는 그냥 빛과 그림자가 빚어낸 우연한 현상이라 하나, 너무도 정확하게 묘사된 사람의 얼굴이 드러난 거대한 바위이다. 문제는 그 주변의 지형이었다. 마치 인공 작품같은 오각뿔 피라미드, 나선형의 언덕, 원형의 성벽같은 것으로 둘러쌓인 장소 등이 있다. 그런데 우연같은 일치가 지구의 스톤헨지 부근에서 발생한다. 사실 스톤헨지는 단독 유적지가 아니다. 주변에는 아직도 용도가 불분명한 선사시대 유적들이 많다. 예를 들면, 유럽에서 가장 큰 원형의 선돌이 열지어 서있는 에이브베리(Avebury) 서클, 무덤이라 불리는 실베리(Silbury) 언덕, 하얀 말의 모습이 초원위에 새겨진 백마(white horse) 언덕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국의 스톤헨지 주변 유적들과 화성의 인면암 주변 유적들의 배치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화성인들이 무슨 이유에선가 지구로 도래하면서 향수에 젖어 영국땅에 자신들의 고향을 새겨넣은 것일까?
<에이브베리 서클(좌)과 실베리힐(우), 출처 : rigorousintuition.ca 및 aulis.com>
<바이킹이 찍은 화성표면의 인면암(좌)과 인면암 주변의 특이지형들(우), 출처: jaewoo0806.wordpress.com 및 rigorousintuition.ca>
<화성지형과 영국유적지를 겹친 지도의 일부분, 출처: rigorousintuition.ca>
2. 스톤헨지는 땅의 에너지가 응집된 특별한 장소이다?
스톤헨지에 가본 사람들의 첫번째 의문은 '왜 하필이면 이 장소인가?'라는 것이다. 주변엔 온톤 평평한 대지인데, 이 장소를 어떻게 선택한 것일까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설명하는 가설이 '레이라인'이다. 지구의 특별한 장소에 에너지가 응집된 장소가 있으며, 이를 연결하면 일정한 규칙을 가진 라인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인이 만나는 곳에는 항상 피라미드나 거대 거석유적들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풍수지리를 보는 듯, 지구에 기와 혈이 있으며 여기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성소를 건설해 그 에너지를 인간들이 종교적 영역으로 흡수해왔다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특정 장소에 전기장과 자기장이 결합되면서 강력한 에너지가 형성되는데(일명 '보텍스 현상'), 그로 인해 공간이동이 가능한 블랙홀과 같은 공간이 형성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까지 알 수 없는 증발사건이 자주 일어났던 버뮤다 삼각지대나 몽골 고원, 히말라야와 함께 스톤헨지도 자주 거론되는 지역 중 하나이다.
그래서일까? 스톤헨지 부근에서는 유독 '미스테리 서클(또는 크롭서클)'이 자주 등장한다. 하룻밤 사이에 밀밭에 등장하는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는 인간이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 미스테리 서클 주변의 방사능 수치는 꽤 높다고 알려져 있으며, 종종 UFO와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기하학적 무늬는 풀이 무슨 이유에선가 갑자기 꺽인 듯 기형처럼 자라면서 만들어진다.(이후에 무늬를 흉내내며 인간들은 풀을 베어 미스터리서클 모방작을 만들기도 했는데, 진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UFO의 소행일까? 아니면 진짜로 분출되는 땅의 에너지가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일까?
<1995년 스톤헨지에서 50m 떨어진 밀밭에서 택시기사가 발견한 미스터리서클,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15분 사이에 당시 최신 펜티엄 컴퓨터로도 1주일 이상 걸리는 149개의 원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무늬(일명 '트리플 줄리아셋')가 만들어졌다. 출처: lucypringle.co.uk>
3. 스톤헨지는 고대 비밀종교의 집회장이었다?
스톤헨지 하면 꼭 나오는 연관어가 바로 '드루이드'이다. 드루이드교는 고대켈트 종교로서, 애니미즘적 성격을 띄는 다신교이다. 불교처럼 불멸과 환생, 전생을 믿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인신공양으로도 유명하다. 이들은 매년 10월 마지막 날, 기괴한 복장을 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처녀 한 명을 골라 죽음의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바로 우리가 잘 아는 '할로윈'은 이러한 의식을 변형 전승한 것이다) 그 희생의식이 벌어진 장소가 바로 스톤헨지였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스톤헨지를 드루이드교도들이 세웠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보편적인 해석은 이미 세워진 스톤헨지를 드루이드교도들이 활용했다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내가 스톤헨지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바로 영화 '테스'를 보고서였다. 영화에서 테스는 가부장적인 사회와 보수적 남자들에 의해 이용당하다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 잡히게 되는데, 마지막 체포되는 곳이 바로 스톤헨지였다. 처녀의 희생제의가 벌어졌던 스톤헨지에서 테스가 사회의 희생양이 되는 장면은 아주 중의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토마스하디 원작, '테스'에서 스톤헨지의 희생제단에서 마지막 잠을 자는 테스 삽화, 출처: executedtoday.com>
4. 스톤헨지는 주술적 치료를 위한 병원? 아니면 천문대?
스톤헨지가 위치한 솔즈베리평원에는 채석할 만한 돌산이 없다. 그런데 2개의 원으로 구성된 스톤헨지에는 2개의 서로 다른 종류의 돌이 사용되고 있다. 건설시기로도 약 1,500년 이상의 시차가 있는 2개의 원 중 안쪽의 원은 블루스톤, 바깥쪽 원은 사센스톤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들 돌을 채굴하려면 가장 가까운 곳이라도 사센스톤은 북쪽 30km, 블루스톤은 서쪽으로 380km 이상이나 떨어져있다.(그렇다고 거기서 채굴했다는 증거도 없다) 왜 2가지 종류의 돌을 사용했는지, 최대 50톤에 이르는 돌을 어떻게 운반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다만 블루스톤이 옛날부터 치유를 위해 사용된 재료라는 점에서 일종의 주술적 장소일 거라는 설은 있다.
배열은 더 미스테리하다. 2개의 원형 바깥쪽으로는 도랑이 있는데, 도랑주변에는 4개의 표지석(station stone)이 있고, 도랑 바깥 북동쪽 방향으로는 기준석(heel stone)이 있다. 그런데 이 돌들의 위치는 태양과 달의 움직임과 묘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선 기준석은 하지에 해가 뜨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4개의 표지석은 하지와 동지에 각각 달이 뜨고 지는 방향과 관계되어 있어 천문대의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추측해볼 뿐이다.(생각보다 천문학 지식이 응용된 고대유물들이 많다. 황도가 사자자리일 때 일출방향을 바라보는 스핑크스와 오리온 자리를 본뜬 기자의 피라밋, 춘추분 오후 3시면 계단에 뱀모양이 나타나도록 만들어진 멕시코 치첸이차의 쿠쿨칸 피라밋, 수수께끼의 별자리 부조와 함께 외계론자들이 UFO 착륙장으로까지 해석하는 터키의 기이한 넴루트 유적과 페루 나스카의 그림문양 등이 모두 그렇다)
일부는 스톤헨지의 모습이 여성의 생식기와 비슷해, 하지 일출 순간 길게 뻗은 힐스톤의 그림자가 스톤헨지를 관통하는 모습에서 다산, 생식, 대지의 여신을 숭배하는 신전이 아닐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맞는 지는 앞으로도 영원히 아무도 모를 것이다....하지만 덕분에 꿈보다 재밌는 해몽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스톤헨지 원경 뷰, 출처: visit-stonehenge.com>
<스톤헨지 복원도(좌)와 태양(빨간색) 및 달(초록색)의 움직임(우), 출처: gopinath-sekar.blogspot.com 및 tivas.org.uk>
<4개의 표지석 중 하나>
5. 스톤헨지는 건축의 시작이다!
스톤헨지를 그냥 건축적으로만 뜯어보면 사실 보-기둥(일명 '라멘구조')으로 단순히 구성되어 있다. 지금은 흔한 건축구조이지만, 인간들이 자연의 나뭇가지를 주워 삼각형의 텐트처럼 서로 기대어 최초의 실내공간을 만든 이후 인공적인 방법으로 더 넓고 높은 실내공간을 만든 최초의 아이디어였다. 당시 구할 수 있는 단단한 재료로는 석재가 유일했지만, 그 무게를 지탱하기 힘든 한계로 인해 보-기둥 구조는 오랫동안 건축의 대세였다. 이후 이슬람에서 아치구조를 발명했고, 로마인들은 이를 돔과 볼트구조로 확장시켰다. 그러면서 재료는 석재 그대로였지만, 높이는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성당에서 보듯 60m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스톤헨지에서 보는 '보-기둥' 구조이다.
건축의 역사가 더 높고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실내공간에 채광, 환기, 조망이 가능한 창을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한 역사로도 볼 수 있다. 보-기둥 구조를 뒤집어보면, 이는 벽에 창을 만든 최초의 구조이기도 하다. 석재는 하중이 무거워 그만큼 두꺼운 벽이 천장을 지지해줘야 하므로 여기에 구멍을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보-기둥 구조는 그런 점에서 구조적 합리성과 공간의 쾌적성을 한꺼번에 해결해 준 셈이다. 그러나 이후 천장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창문뚫기 방식을 찾아야 했던 건축가들은 결국 고딕건축을 고안해냈고, 이는 구조와 공간을 분리시키는 모더니즘 건축의 시초가 되었다. 과감히 단언컨대, 스톤헨지의 보-기둥 구조야 말로 인간의 발명품 중 가장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진정한 건축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톤헨지에서 얻어낼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참 다양하다. 그게 고대유적을 보는 쏠쏠한 재미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내가 이 곳에서 시간을 뛰어넘어 이 유적을 건설한 자들과 조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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