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여행이야기

나만의 배낭여행 3원칙

budsmile 2009. 9. 22. 17:19

나의 여행은 대학교 3학년이던 1992년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1학년 때 교내에 붙은 포스터를 본 순간 시작되었다. 감히 해외에 나간다는 것을 꿈도 못 꾸던 시절, 해외여행의 자유화로 인해 캠퍼스에 나붙기 시작한 배낭여행 광고는 나에게 또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듯했다. 그래 바로 저거야!!!

 

정말 열심히 알바를 뛰었다. 1년반동안 모은 200여만원이(그당시 맥주 한잔이 700원, 1인실 하숙비 가 23만원이었으니 꽤나 큰 돈이었다.)  내 여행 밑천이 되었다. 가장 싼 할인항공권으로 암스텔담을 거쳐 런던에 가는 KLM 비행기티켓을 50만원에 끊고, 유레일패스(유스패스)를 사고나니 남는 돈은 130만원---그게 나의 두 달간 유럽여행에서의 생활비였다.

 

그 때는 해외나가는 것도 복잡했다. 우선 여권을 만들려면 몇 시간짜리 반공교육을 받아야 했고, 병역의무를 마치기 전이라(11월이 입대였다.) 신고도 해야했다. 해외 나가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여기저기서 선물을 사가지고 오라는 요청도 많았다.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는 흡연석에 앉아(그 때만 해도 그랬다) 담배를 꼬나물고 다가올 나의 멋진 두달간의 일탈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행은 또다른 생활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더욱 더 그렇겠지만 사실 130만원으로(선물로 30만원을 썼으니 실제 생활비는 100만원이 전부였다.) 유럽, 특히 서유럽을 두 달간 돌아다니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그리고 나에겐 젊음이 있었다.

 

숙박비는 주로 야간열차에서 도시간 이동을 통해 절약했다. 지금은 고속열차가 나오고 열차 내부가 많이 개조됬지만 그 당시엔 컴파트먼트(6명 정도가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작은 방)로 열차가 구분되어 있었다. 이 의자를 양 방향에서 쭉 잡아당기면 서로 맞닿아 침대가 되었는데, 나에겐 오히려 시간도 절약하고 돈도 아낄 수 있는 편안한 잠자리였다.(대신 예약되지 않은 컴파트를 찾아 기차가 도착하면 남보다 더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가끔 기차역에서 노숙도 하곤 했는데 이건 좀 불편하다....

 

세수와 간단한 빨래는 주로 역사나 맥도날드(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에서 해결하고, 식사는 대부분 바게뜨를 사서 가지고 다니며 세끼 모두 해결했다. 1박에 10달러 안팎하는 유스호스텔은 1주일에 한 번 정도 들어갔는데 그럴 때는 원없이 샤워하고 빨래하고, 마트에서 사가지고 온 고기와 상추, 쌀로 맛있는 밥도 지어먹었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니 무거운 배낭으로 짓눌려 있던 상의는 땀에 절어 소금가루가 뚝뚝 떨어지기 일쑤였다.(배낭크기도 예전에는 등에 큰거 하나, 앞에 작은 거 하나를 맸었지만 언제부턴가 그냥 작은 거만 하나 달랑 메고 간다...그러니 마치 동네 등산가는 차림으로 공항에  서 있는 스스로를 보고 놀라기도 한다.)

 

그러나 봐야할 것은 절대로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멋진 곳을 발견하면 맥주 한 잔 하는 여유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배낭여행은 해를 거듭할 수록 진보해 두 번째 배낭여행부터는 같은 돈을 들이고도 너무나 편안히 잘 먹으며 다닐 수 있었다.

 

사실 나의 여행이력에 사람들은 돈많은 부자라 단정짓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은 그리 비싼 취미가 아니다. 생활비 기준, 인도는 한달에 30만원, 남미는 두 달에 100만원정도면 충분했다. 할인항공권은 날짜가 지정되는 제약이 있지만 잘만 구하면 싸면서 각종 혜택이 주어지는(예를 들어 호텔1박을 공짜로 준다거나) 것들이 많다. 남미(약 120만원)를 제외하고 70만원 정도면 세계 어느 곳이든 비행기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여행횟수가 늘어나다보니 나에겐 일정한 원칙이 생겼다. 내가 배낭여행이라 부를 수 있는 여행의 원칙......

 

첫번째, 여행사에서는 비행기표만 사야 한다. 현지에서 숙소를 잡고 이동경로를 짜는 게 얼마나 큰 여행의 즐거움인데 이것까지 여행사에 맡길 순 없다. 게다가 Lonely Planet이라는 정말 완벽한 안내서까지 있지 않은가......요즘엔 심지어 가이드를 끼고 단체로 몰려다니며 호텔(심지어 호스텔도 아니다!!)까지 잡아주면서 편안히 여행하는 프로그램까지 있다는데 이것은 내 기준상 배낭여행이 아니다.

 

현지 숙소는 가격대도 다양하지만 그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생각없이 찾아갔는데 정말 멋진 곳이 많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생판 모르는 사람과 같이 밥해먹고 맥주마시며 농담따먹고...여행정보 교환하고 소박한 정원에서 누군가 치는 기타소리에 향수에도 젖어보고.....그냥 닭장같은 방만 있는 호텔은 가장 피해야할 경계대상 1호인 것이다. 물론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찾아갔는데 방이 꽉 차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꽤 있다. 어쩌랴 그것도 여행의 즐거움인걸...그렇다고 사람사는 동네에 숙소를 못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동경로는 토마스쿡 열차시간표와 Lonely Planet, 그리고 서점에 널린 각종 여행안내서를 보면서 작성한다. 나는 여행을 가기 전 별도로 노트 한 권을 작성했는데 도시 정보(교통, 숙박, 날씨 등등)와 봐야할 곳의 정보를 꼼꼼히 정리해서 가져갔다.(박물관이라면 꼭 봐야할 그림은 무엇인지, 휴관일은 언제며, 관람시간과 학생할인여부 등등까지) 사실 여행책자는 너무 무겁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도 한국관광공사 지하도서실에 가면 널려있다. 복사해서 붙이고 적다보면 어느새 여행을 한 번 다녀온 셈이 된다.

 

두 번째, 여행경비는 본인이 벌어서 가야 한다. 난 신용카드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 그것은 나하고의 약속이기도 하고 돈을 요령있고 가치있게 쓰는 법도 여행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 수 있는 거 다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수 있다면  여행은 풍요롭겠지만 젊었을 때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은 남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여행은 가급적 혼자서 가야 한다. 혼자 가서 현지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100%라면 두 명이 같이 가면 50%, 세 명 이상이면 0%라고 생각한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사람들과 만나는 데 있다. 가다보면 현지인들 뿐만 아니라 동행인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들과 전혀 다른 인생을 논하고 공유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또한 여행의 목적이 아니련가? 타지마할에 감동하지만 그것을 만든 인도인들은 지저분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무슨 여행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분들은 그냥 사진으로 타지마할만 감상하면 될 뿐이다.(좀 과격한가?)

 

혼자가면 약간 외롭기는 하다.  하지만 평생을 살면서 내 스스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점에서 여행은 소중한 자기성찰의 시간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나에 대한 치열한 자기비판도, 내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도 이 때 이루어졌다. 그러니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그 때 피곤해도 매일 썼던 일기에는 내 젊었을 때의 고민과 방황과 불안함과 희망이 모두 들어있다.  모두 내 삶을 지탱하는 기억들인 셈이다.

 

암튼 방학과 휴가를 이용해 나간 배낭여행 17회와 가족 배낭여행 12회 포함, 어느덧 87개국 547개 도시에 이르렀다. 앞으로 계획한 게 물론 더 남아 있지만, 나의 여행은 아직도 내 설레는 마음속에 계속 되고 있다.......

 

◈ 1992년 여름 배낭여행 : 서유럽과 이집트 16개국(영국, 프랑스, 스페인, 모나코, 이탈리아, 바티칸, 그리스, 터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헝가리, 이집트)

 

1997년 여름 배낭여행 : 지중해와 중동 16개국(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바티칸, 그리스,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룩셈부르크, 모로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1998년 겨울 배낭여행 : 남아시아3개국(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1998년 여름 배낭여행 : 동유럽 및 북유럽 18개국(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체코,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러시아,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1999년 겨울 배낭여행 : 멕시코

 

2000년 겨울 배낭여행 : 동남아 4개국(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 태국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까지는 가족배낭으로 다녔다. 즐거운 추억이다.

⊙2000년 가을, 대학원 연구실에서 일본 도쿄와 닛코를 다녀왔다. 

 

2001년 겨울 배낭여행 : 일본

 

2002년 겨울 가족배낭여행 : 일본(부모님 모시고 가족 배낭여행 다녀왔다, ANA항공 이벤트당첨 공짜비행기티켓 덕분)

  * 내 여행 스타일 그대로 다녀왔는데 연세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좋아하셨다.(내 기질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게 틀림없다.)

 

◈ 2003년 겨울 배낭여행 : 남미5개국(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칠레)

⊙2003년 여름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다녀왔다.

 

◈ 2004년 신혼 배낭여행 : 싱가포르, 스리랑카

⊙2004년 스위스 제네바에 갔고, 비행기 트랜짓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이탈리아의 티볼리에 다녀왔다.

⊙2004년 겨울에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다녀왔다.

 

◈ 2005년 여름 배낭여행 : 중국, 티벳

⊙2005년 여름에는 뉴질랜드에 다녀왔다.

 

◈ 2006년 여름 배낭여행 : 튀니지

 

⊙2007년 여름엔 미국 서부와 플로리다, 그리고 멕시코에 다녀왔다.

⊙2007년에는 스위스, 프랑스, 핀란드를 다녀왔다.

 

◈ 2008년 여름 가족여행 : 인도네시아 발리

 

◈ 2011년 가족여행 : 괌

 

◈ 2012년 가족여행 : 사이판

 

◈ 2013년 여름 배낭여행 : 이란

⊙2013년 10월 헝가리, 터키, 케냐를 다녀왔다.

⊙2013년 12월 중국 북경을 다녀왔다.

 

◈ 2014년 가족여행 :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2014년 2월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2014년 4월 스페인에 다녀왔다.

⊙2014년 5월 세네갈,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2014년 11월 독일을 경유해 베네주엘라에 다녀왔다.

 

◈ 2015년 여름 배낭여행 : 큰아들과 둘이서 미얀마, 태국에 다녀왔다.

2015년 겨울 가족 배낭여행 : 스페인, 안도라

◈ 2015년-2017년 영국체류

 

◈ 2016년 겨울 가족배낭여행 : 멕시코, 쿠바

◈ 2016년 봄 가족배낭여행 : 몰타, 이탈리아, 바티칸, 산마리노

◈ 2016년 여름 가족배낭여행 :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프랑스

 

◈ 2017년 겨울 가족배낭여행 : 이집트

◈ 2017년 봄 가족배낭여행 : 키프로스, 그리스,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 2017년 봄 가족배낭여행 : 미국, 캐나다

◈ 2017년 여름 가족배낭여행 : 유럽 14개국(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헝가리, 체코, 덴마크, 스웨덴)

◈ 2017년 가을 가족배낭여행 : 러시아, 핀란드, 노르웨이

◈ 2017년 겨울 가족배낭여행 : 프랑스 남부, 스페인 북부, 포르투갈

 

◈ 2018년 여름 가족배낭여행 : 중국(마카오&홍콩)

⊙2018년 11월 네덜란드와 덴마크에 다녀왔다.

 

◈ 2019년 여름 배낭여행 : 둘째아들과 둘이서 아르메니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을 다녀왔다.

 

◈ 2022년 여름 배낭여행 : 셋째아들과 둘이서 호주를 다녀왔다.

 

⊙2023년 3월 프랑스와 영국에 다녀왔다.

 

◈ 2024년- 2027년 미국 체류

◈ 2024년 가을 배낭여행 : 자메이카

◈ 2024년 겨울 배낭여행 :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2024년 8월 말레이시아에 다녀왔다.

 

◈ 2025년 여름 배낭여행 : 그린란드(일루리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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