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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7)-Less is more!

budsmile 2008. 7. 3. 16:10

1.1972년 7월 15일!!!

 

이 날은 건축에서의 모더니즘이 무너지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된 날이다. 어떻게 한 시대의 ‘시대정신’이 이렇게 칼로 자르듯 정확한 시점을 가지고 나뉠 수 있을까? 이 황당한 이야기의 중심엔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 이고(Pruit-Igoe)’ 아파트단지가 있다.

 

이 아파트단지의 애초 계획은 빈민가의 주거환경 정비에 있었다. 1954년 열악한 환경을 가진 저층밀집지구를 깨끗이 밀어버리고 국제현상설계를 통해 건축가 야마자끼의 최신식 아파트단지를 건설하게 된다.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모더니즘의 표본이라 불릴 정도로 관심을 받았던 이 단지는 건설되자마자 온갖 종류의 건축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영세한 주민들은 주거환경을 방기했으며, 이로인해 쓰레기 적치, 설비의 이상노후화가 진행되고 계단실, 엘리베이터 및 오픈스페이스는 동네불량배들에 의해 강도강간의 무법지대가 되어버렸다. 결국 지은지 20년도 안 돼 전체 43개동에서 27개동이 사람이 살지 않게 돼 단지 전체가 폭파해체되어 버렸다. 1972년 7월 15일 바로 그날이었다.

 

<프루이트 이고 아파트단지 해체모습>

 

2. 육중한 외관에 덕지덕지 붙은 장식을 제거한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들은 비로소 구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고, 여기에 마음먹은 대로 형태적 표현이 가능한 콘크리트를 사용하게 되면서 모더니즘은 시작되었다. 모더니즘 4대 거장인 ‘미스 반데 로에’의 ‘Less is More', 즉 단순할수록 풍부해진다는 논리는 모더니즘 구조철학을 지배했고, ’르 꼬르뷔지에‘는 구조로부터 분리된 벽을 이용해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공간을 창조해내고 있었다.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새로운 주택수요가 필요했고, 모더니스트들은 단순한 구조가 가진 합리성을 대량생산체제와 결합해 여기저기서 대규모 도시개발을 주도했다. 역시 ‘르 꼬르뷔지에’가 계획했던 파리중심부 재개발계획을 보면, 오래된 구시가 한복판을 완벽하게 밀어버리고 고층 아파트단지를 일률적으로 배치해놓고 있다. 새로운 건축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개조시킴으로서 완벽하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엘리트적 생각에서 이미 모더니즘은 스스로를 파멸시킬 그 오만함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르꼬르뷔지에의 파리대개조계획>

 

도시란 단순히 '거주’의 개념만으로 설명되진 않는다. ‘장소’가 가지는 고유한 역사성, 퇴적된 시간위에 켜켜이 쌓인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야말로 도시를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다. 그러나 모더니스트들은 이러한 것들을 충분히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자신들을 시대의 계몽자라 착각했다. 보기좋게 다듬어진 가로, 커뮤니티를 고려한 공공공간, 잘 짜여진 동선, 깨끗한 외관, 합리적인 구조......그러나 막상 사람들은 그들이 따라주기 원했던 방식을 거부했고, 결국 모더니즘은 그렇게 끝이 났다.

 

3. 난 서울에서 아직도 많은 모더니즘을 본다. 도시는 부족한 주택수요를 위해 땅을 내놓아야만 하는 물리적 가치로만 간주된다. 장소성, 역사성, 시간성, 공동성(共同性)이란 고유의 도시적 가치들은 너무나 쉽게 ‘뉴타운’이란 투자가치로 치환되어 버린다. 획일적인 외관, 획일적인 삶의 방식들을 강요받으면서도 정작 내가 사는 도시를 뒤돌아보는 것엔 인색하다.

 

<은평뉴타운의 모습>

 

도시는 보기싫은 환경을 한번에 밀어버리고 새로운 현대식 건물을 짓는다고 정비되진 않는다. 그러한 재개발 방식 대신 스스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통해 환경을 바꾸어 가는 자생력을 주는 재개발은 가능할까? 마치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명쾌한 공간이 그 주변을 변하게 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도시의 핵(Core)이라 부르고 싶다. 그것은 청계천과 같은 형태일 수도 있고, 광장이 될 수도 있다. 오래된 문화재일 수도 있고, 새로운 형태의 공공건물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람이 공간을 지각하는 것은 오로지 주변의 물리적 환경에 의해 이미 결정된다는 게슈탈트 이론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주변환경과의 교감을 통해 서로를 발전시킨다는 스키마이론이 우리의 도시에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서구에서 모더니즘이 무너진 지 30년......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까? ‘Less is More!!!'....적게 손댈수록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는 법이다. (2004.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