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기행(마지막) - 혼돈마저 매력적인, 콜카타(캘커타)
가야역에서 9시 35분 출발예정인 기차는 새벽 0시 30분 플랫폼에 들어왔다. 나는 1등석 대합실(물론 내 기차표는 2등석이었지만, 대합실을 지키고 있는 인도인을 살살 구슬린 보람이다.)에서 쉬다가 만난 일본배낭족 친구와 기차에 올랐다. 바로 침낭을 꺼내 잠을 청한 나는 새벽 다섯시가 되어 눈을 떴다. 피곤해서인지, 짧지만 깊게 잠들었었나 보다. 기차는 예정된 10시간을 훌쩍 넘기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캘커타역에 들어선다. 밖에는 비가 온다.
캘커타 하우라역은 내가 인도에서 본 역 중 가장 현대식이다. 나는 일본인 친구와 택시를 타고(제대로 된 택시도 인도에선 처음이었다. 물론 미터기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수데르 스트리트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캘커타는 인도의 여느 도시들과 다르다. 높은 빌딩들, 넓은 도로와 많은 차, 전광판의 광고들, 쇼윈도우에 진열된 고급제품들......겉으로 보이는 캘커타는 영화 '시티 오브 조이'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영화의 배경은 역 뒷편의 슬럼가가 배경이지만......
수데르 스트리트는 방콕의 '카오산 로드'와 같은 배낭족들의 밀집지역이다. 구세군 숙소를 비롯해 싼 가격의 호스텔과 식당들이 밀집되어 있다. 교통도 편리하고, 필수품들을 살 수 있는 시장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간 날은 모든 호스텔의 도미토리가 꽉 찬 상태였다. 나는 일본인 친구와 함께 더블룸을 빌렸다.
캘커타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의미의 '릭쇼(rickshaw)'가 남아있다. 우리로 치자면 '인력거', 통상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릭쇼를 움직이는데, 여기서는 아직 릭샤가 직접 '맨발로'(말 그대로다!) 손님을 태우고 뛰어다닌다. 거리의 후미진 곳에서는 홈리스들이 그냥 누워 자거나 텐트를 쳐놓고 살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현대적인 캘커타에서 보이는 이유는......그만큼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빈곤층이 많아진다는 얘기일 것이다.
숙소 근방에서 한국인 배낭족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은 마더테레사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었는데, 정말 다양한 직종에 다양한 이유로 캘커타에 머물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일본인 친구와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짜이 한 잔에 푸리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푸리가 약간 매워서 젤랍과 라두라는 단 과자로 입안을 진정시켰는데, 인도음식들이 모두 내 입맛에 맞는다. 숙소에 돌아가 드디어 빈자리가 생긴 도미토리로 자리를 옮기고는, 지하철을 타고 칼리신전으로 향했다. 눈이 세 개 달리고, 손은 네 개인 칼리는 시바신의 아내로 굉장히 난폭한 신 중 하나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상 주위를 돌면서 이마에 점을 찍고 기도를 한다. 사원은 시장 가운데 있었으며, 굉장히 비좁았다. 양의 목을 잘라 제물로 바치는데, 칼리 신상 주변으로는 뻘건 핏자국이 선명하다.
<뒤에 보이는 하얀색 양파머리 건물이 칼리신전>
점심을 먹고 인디언 뮤지엄에 갔다. 론리플래닛에는 다 돌아보는데 하루가 걸릴 것이라 씌어져 있었지만, 실상 볼만한 고고학실은 조그만 했고, 나머지 자연사나 인류학 전시실은 좁은데다 어둡고 너무 무질서해서 금방 싫증이 났다. 고고학실의 수많은 조각 콜렉션을 감상한 후 중정에 나와 쉬고 있는데, 마침 세 명의 인디아 대학생들과 눈이 마주쳐 이것저것 얘기하다 헤어졌다.(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인도인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난다. 식량자급자족부터 핵보유까지, 인류의 정신적 세계를 선도한다는 것부터 세계 최강의 IT, 영화산업까지......그리고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과 맞짱을 뜰 수 있다는 자신감도 이들에게는 더없이 충만하다.)
<인디언뮤지엄에서 만난 인도 대학생들>
지하철을 타고 캘커타 최대의 이슬람사원, 나코다 모스크에 갔다. 친절한 사람이 지하철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그 곳까지 직접 데려다 주었는데, 모스크는 시장의 조그만 골목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좁다란 곳에 있다보니, 여느 모스크와 다르게, 천장을 높게 틔우지 않고, 각 층을 모두 기도실로 쓰고 있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한 것이 눈에 띄였다. 앞의 전정도 그리 넓지 않아, 입구의 발을 씻는 곳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는 모스크보다도 입구 근처 시장(바자르)를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마치 우리 남대문 시장처럼 흥정도 하고, 구경도 하면서, 이것 저것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코다 모스크 전경(출처:easyvivek.wordpress.com)>
저녁엔 다시 수데르 스트리트로 돌아와 네팔인 식당에서 칼국수를 먹고 '배낭족들에게' 유명한 노점에서 라시를 하나 사서 물고 있으니, 세상이 모두 풍만해보인다.
<나코다 모스크 앞 바자르>
캘커타를 끝으로 나의 북인도 여행은 끝났다. 나의 다음 여정은 여기서 방글라데시 다카로 넘어가는 것이다.(당시만 해도 캘커타에서 다카까지 육로이동은 불가능했다.) 헌데 문제가 생겼다. 인디언 에어라인스의 컴퓨터의 서버가 고장나는 바람에 모든 항공권 발권이 중단되고, 희망자들은 아침부터 공항에 가서 대기표를 받아 운이 따라주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덕분에 나도 캘커타 공항에서만 이틀을 허비해야 했고, 겨우 표를 구했을 때는 이미 나의 할인항공권의 유효기간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다. 가까스로 다카에 넘어가긴 했지만, 루이스칸의 국회의사당 정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다카에서의 일정은 나중에 다시 소개키로 한다)
이제 인도를 떠난다......인도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딱 두 부류다. 지저분함을 느끼는 부류와 자유를 느끼는 또 한 부류......물론 인도는 상상하는 만큼 지저분하고, 가난하고, 더럽다......하지만 고급스럽고 깨끗하며 겉포장이 화려한 것을 高等이라 부르는 것은 우리만의, 철저히 서구화된 우리들의 시각일 뿐이다. 대신 인도인들은 온화하고 성품이 고우며, 포용력이 크다. 그저 인심이 좋은 것을 떠나, 인도인들에게서는 고결한 정신적 힘이 느껴진다. 단지 추상적 느낌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만난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풍겨져 나오는 감동같은 것말이다. 그걸 '문명'이나, '가난'같은 것과 연계하는 것은 넌센스다. 오히려 속물적인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황하는 것은 인도를 겁없이 방문한 나같은 '문명인'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이 곳을 여행하는 동안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자유'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깨끗함'으로 내 마음을 정화하게 된다. 기분이 너무 좋다. 그건 내가 지금 '진짜' 인간들, 내가 닮고 싶은 인간들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서일 게다. 누구나 인도에 가면 또 하나의 고향이 생긴다고 한다. '마음의 고향'......너무나 편안해진 마음을 안고 이제 인도를 떠난다. 나에게도 또 하나의 고향이 생긴 듯싶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칠때면, 난 인도를 항상 떠올리게 될 것만 같다. 아! 인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