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기행(8) - "19禁" 카주라호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각. 오토릭샤를 타고 찬바람을 가르며 아그라 칸트역에 갔다. 아직 기차 출발시각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았는데, 몰려드는 서양관광객들은 모두 카주라호행이다. 기차는 express라며 더 비싸게 티켓을 팔았지만, 막상 우리나라 통일호 수준이다. 그래도 인도에서 예외적으로 제 시간에 출발한다. 오전 8시 15분에 출발한 기차는 10시 40분경 잔시에 도착했다. 문제는 그 다음......
여기서 버스를 타고 7시간 정도 가면 카주라호인데, 안내소에서는 오늘 더 이상 연결되는 버스가 없다고 한다.(이유는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카주라호에 가려던 배낭족들이 떼로 모여 웅성웅성거리고, 나도 잠시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네덜란드인 커플이 나에게 다가왔다. 자기가 1,300루피에 차를 렌트했는데 같이 갈 생각이 있냐는 거다......나는 조금 비싼 거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120루피만 내란다. 어차피 자기들은 인도비자가 이틀밖에 남지 않아 카주라호에는 반드시 가야하니, 성의표시만 하라는 게다. 당근 OK~! 사실 딜럭스버스 값도 안되는 돈에 시간까지 절약이 되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그 많은 배낭족들 중에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역시 하늘은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ㅋ
그 커플은 내가 아그라역에서부터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모습이 마치 뽕이라도 맞은 것처럼 몰골이 심난해 보여서였다. 그런데 차안에서 서로 얘기하며 웃고 떠들다보니 생각보다 참 호탕한 사람들이다.
오후 3시 30분, 드디어 카주라호에 도착했다. 나는 숙소를 정하고는 고고학박물관에 들렀다가, 유적지로 곧장 직행했다.
카주라호의 사원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동쪽, 서쪽 그리고 남쪽그룹이 있는데, 미투나상은 힌두교 사원들이 있는 서쪽그룹에 있다. 동쪽그룹은 자이나교 신전들이다.
사원들은 기단을 만들고 계단을 통해 성소에 접근토록 만들어져있다. 사원의 외관은 정말 정교한 조각으로 다듬어져 있었고, 성소는 열지어 서있는 기둥들 사이로 역시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찬델라 왕조의 도읍지이기도 한 카주라호는, 그러나 지금은 정말 작은 동네에 불과하다. 여기에 20여기가 넘는 사원이 모여 있는데,(전성기 시절에는 80개가 넘게 있었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코 남녀교합상이 있는 힌두교 사원들이다. 특히 데비자그단베 사원이라 불리는 사원은(아쉽게도(?) 수리중이어서 공사용 비계 사이사이로 볼 수밖에 없었다.) 노골적으로 남녀성기와 갖가지 체위의 성교장면이 묘사된 탄트리즘을 보여준다.
性, 그리고 성교행위가 어떻게 신성한 종교적 장소에 버젓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설은 분분하지만, 이들은 성행위도 종교적 행위의 일부로 봐왔다는 것은 명백하다. 실제 밀교적 관점에서는 남녀간의 성행위와 이로 인해 무아지경의 상태로 도달하는 것은 신과 만날 수 있는 의식으로까지 여겨진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의 입문의식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이슈타르 숭배를 위한 집단성교 의식(이슈타르는 봄과 새벽의 여신으로 번식과 다산을 상징한다. 그녀의 이름은 기독교에서 '이스터'로 번역되고 축일은 부활절이 된다. 부활절을 상징하는 토끼나 달걀은 모두 이슈타르가 가진 번식의 상징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나 드루이드교는 종교적 제의로서 성행위를 거행했고, 이 제의는 여전히 오늘날 비밀결사체를 통해 유효하게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다빈치코드에 나온 시온수도회의 비밀의식도 그러한 상상의 소산이리라)
어쨋든 이 조각상들을 보며 에로틱하니, 외설적이니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건 순전히 개인의 자유인데, 다만 판단의 잣대는 인간 세상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생식과 본능의 자연스런 행위에 도덕관념을 들이대고, 종교의 가치를 덧씌운 것처럼, 세상에 그저 묵묵히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사람들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안달이고, 자기 입맛에 맞게 굳이 해석하려고 애쓴다. 그 해석은 꼭 자신들이 경험한 만큼만, 자신들이 아는 것 만큼만 가능할진데, 사람들은 부족한 만큼의 겸손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그 해석이 맞느니 혹은 틀리느니 하면서 다투기를 즐긴다. 하지만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산은 그저 산이고, 물은 그저 물일 뿐인 것을......세상에 입힌 인간의 탐욕스런 생각과 어줍잖은 가치에 결국 자신을 다시 얽어매고, 여기에서 삶의 존재가치를 찾고, 혹은 정파를 만들어 서로 헐뜯고 싸우는 게 무슨 인간의 고귀한 특권인 양 착각하며 일평생 살아간다는 게 말이다......
마치 숨은그림찾기 처럼 높다란 사원 여기저기서 미투나상을 찾느라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 지금 여행을 갔다온 사람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보면 이끼 제거 등 보수가 됐는지 우윳빛의 깨끗한 조각상들을 볼 수 있다.
<출처 : traveltoindiaguide.blogspot.com >
< 출처 : blog.travelpod.com >
일몰까지 보고 밖으로 나오니 완전히 캄캄한 암흑천지다. 정말 조그만 도시인데, 눈에 번쩍 띄는 한글간판이 보인다. '아씨식당'......반가워 들어갔는데 주인은 인도인이다. 한국사람에게 요리를 배워 인도인이 차린 식당이라....왠지 더 정감이 갔다. 양도 많고 맛도 일품이었는데, 특히 양배추로 담은 김치가 제법이었다. 수북히 쌓인 방명록에 글을 쓰고 뒤적이다보니 한비야씨의 글도 보인다. 내가 갔을 때만해도, 이 아씨식당 하나 뿐이었는데, 요 근래에는 이 도시에 한국식당만 무려 4개 이상 있는 듯하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얘기이리라.....
다음날 아침 일찍 동쪽에 있는 자이나신전군을 찾았다. 자이나교는 힌두교, 불교, 시크교 등과 함께 인도에서 태생한 종교 중 하나이다. 싯달타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마하비라가 창시한 종교로 불교와 유사한 교리를 보인다. 즉, 윤회와 업이라는 힌두교의 바탕위에 금욕과 고행, 불살생을 추구한다. 이원론적 사고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세를 부정하고 해탈을 얻는 것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여긴다. 특히 불살생을 위해 채식주의에다가, 물도 헝겊에 걸러마시고 길을 걸을 때도 빗자루로 앞길을 쓸면서 다닐 정도였다고 하니 거의 강박관념 수준이다.(마하트마 간디도 이런 자이나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덕분에 (살생이 불가피한) 농업보다는 상업에 일찍 눈을 떠 인도에서도 부유한 계층이 많다고 한다. 또한 많은 자본으로 건설된 사원은 정교한 장식으로도 유명하다.
신전은 어제 봤던 힌두교 사원들과 그 형태나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가장 금욕적인 종교의 신전과 가장 말초적인 탄트리즘을 담은 신전이 한 도시에 있다는 것이 참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저녁에는 서측 신전군 옆에, 지금도 사용하는 시바신전으로 갔다. 6시 30분, 주위가 캄캄해지고 나서야 푸자(puja, 힌두교의 제사의식)가 시작되었다. 시끄럽게 종과 꽹과리를 울리는 사람 옆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제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향을 피우고 피리를 불며 열심히 거대한 링가(시바신의 성기를 상징하는 돌기둥) 앞에서 춤을 추며 의식을 집전하고 있는데, 조용하고 경건한 통상의 예배와는 거리가 먼, 뭔가 사람 혼을 쏙 빼놓는 분주함이 색다르다.
힌두(Hindu)-힌두교의 힌두는 인디아를 가르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지역이름을 종교명칭으로 쓰고 있다는 말인데 그만큼 힌두교는 종교라기보다는 규범에 가까우며 모든 지역과 계층을 아우르기 위해 포괄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힌두교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아바타(화신)'인데, 창조의 신 브라흐마, 파괴의 신 시바, 유지의 신 비슈누가 삼위일체의 신으로서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바로 이 세 신들의 아바타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힌두교에서는 붓다도 비슈누 신의 아홉번째 화신이다. 브라흐마, 시바, 비슈누도 알고 보면, 세 명의 신이 아니라 유일한 절대신의 다양한 속성을 달리 부르는 것이다. 다신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일신교와 같은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힌두교는 어떤 지역, 어떤 종교라도 포용하는 힘을 가졌다. 나는 그게 힌두교를 믿는 인도의 저력이라 생각한다. 많은 언어와 민족과 풍습과 종교만큼이나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나라,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도 자연스레 자신의 문화로 받아들일 줄 아는 나라......여행을 통해 이제 인도가 서서히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