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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절(6) - 양평 용문사

budsmile 2012. 5. 22. 17:00

화창한 주말 오후, 우리 가족이 이번에 택한 가족소풍 장소는 바로 양평 용문사이다. 용문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절이긴 하나,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며 모두 소실되고 남아 있는 전각들은 대부분 근래에 다시 지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답사순위에선 밀렸지만, 이번엔 양평리조트에 숙소를 잡고 보니 자연스레 첫번째 코스로 선택이 됐다.

 

 

그런데 왠지 고색창연과는 거리가 멀고 현대적인 냄새가 물씬 풍길 거라 기대했던 나에게 절 입구는 기대 이상의 분위기로 나를 압도한다. 특히나 오래된 절일수록 일주문까지 죽 늘어서있는 음식점들과 기념품가게들로 북적이던 모습과는 달리, 이 곳은 입구(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용문산 국민관광단지로 조성되어 잔디밭, 분수, 꽃밭 등이 이어진 덕분에 호젓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게 너무나 기분이 좋다.

 

일주문을 지나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콘크리트가 깔린 널따란 신작로(길 옆에는 도랑이 있어 물흐르는 소리가 제법 청량하다.)가 있고, 그 옆으로는 옛 산길(흙길)이 이어진다. 이 두 길은 절 앞 흔들다리에서 다시 만난다.

 

 

3킬로 쯤 걸었을까? 그 유명한 은행나무가 나타난다. 수령 1,100년을 자랑하는 웅장한 은행나무......아마 용문사에서 제일 유명한 명물이 아닐까 한다. 천연기념물 30호로도 지정되어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은행나무는 여기를 찾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은행나무가 명물이다 보니, 절집의 구조도 특이하다. 통상 일주문을 통해 접근하는 방향으로 사천왕문이 있고 이후에 루를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 길이 이어지는데, 여기는 오르막길을 올라서다가 은행나무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두 번을 꺽어 석축을 올라서면 대웅전과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말해, 대웅전의 축은 통상적인 순례로가 아니라, 은행나무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대웅전 왼쪽으로는 요사채가 있고, 삼성각으로 올라가는 샛길이 놓여 있다.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전각들이 아기자기한게 자연스럽게 발길을 잡아당긴다.

 

 

 

삼성각에 오르자 삼성각과 대웅전 사이로 계단이 놓여 있다. 용문사에서 제일 재미있고 아늑한 공간이다. 석축을 쌓아 그 위에 독성각과 산령각의 2채를 직각으로 배치해 놓았다. 그런데 경사가 급해서 계단은 S자로 휘돌아 그 조그만 중정에 다다르는게 독특하다. 자로 잰 듯 엄격한 구성보다는 약간 허술한, 그래서 파격이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계단을 올라가다말고 삼성각 지붕 건너 요사채를 바라본다.

 

 

아담한 독성각의 모습이다.

 

 

독성각보다 조금 큰 산령각이 산 아래를 굽어 본다.

 

 

요사채의 모습이다. 이 곳은 물론 일반인 출입금지다. 용문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한데, 내가 갔을 때도 외국인들이 참 많이 드나들었다.

 

 

산령각에서 바라본 은행나무.....아마 용문사 최고의 풍광이 아닐까 한다.

 

 

다시 대웅전으로 내려왔다. 대웅전 풍경 너머로 보이는 삼층석탑....석가탑을 본뜬 것같긴 한데......대웅전 앞마당은 좀 특이한 공간구성을 가졌다. 대웅전과 지장전이 일렬로(동급으로) 서 있고, 오른쪽은 관음전이, 바로 앞은 범종각과 삼층석탑이 마당을 빙 둘러싸는 형국이다. 오브제들을 배치하여 공간을 잘게 쪼개기 보다는, 오브제로 둘러싸인 일정 규모 이상의 마당을 만드는 데 더 신경을 쓴 듯한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마당은 좀 휑한 느낌마저 준다. 장소가 좁아서였을까? 아니면, 의식을 위한 장소가 필요했던 걸까?(아무리 그렇더라도 위계없이 나열된 듯한 '생뚱맞은 규모'의 석탑과 8각형의 관음전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마침 석가탄신일이 가까워서 인지 대웅전과 지장전 사이에는 저렇게 예쁜 조각상들도 설치되어 있다. 덕분에 아이들은 부처님 목욕시켜드릴 기회도 갖고, 삼배도 하고, 떡도 받으니 다들 신났다.

 

 

 

관음전은 용문사의 보물,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을 안치하기 위해 2007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왜 8각형의 전각일까? 8각형.....통상 원형과 같은 중앙집중적인 공간의 건축물은 그 건축물이 놓이게 될 자리의 특별함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많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당한 장소를 기리기 위한 로마의 템피에토(브라만테 作)가 그렇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느님께 바칠려고 했던 곳 위에 지어진 바위의돔 사원(예루살렘 소재)이 그렇고, 쇼토쿠 태자가 꿈 속에서 부처를 만난 자리에 세워진 호류지(법륭사)의 몽전이 그렇다. 그건 원형의 공간이 가진 상징성, 집중성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용문사의 이 8각형 관음전이 놓인 자리의 비밀은?(아직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뿐이라는 설명밖에는......그래서 조금 아쉽다!)

 

 

 

관음전 옆에는 범종각이 있고, 그 앞에는 법고를 설치한 루가 있는데 최근에 만들어진 듯 단청을 칠하지 않은 모습이 산뜻하다.

 

 

 

가는길에 부도밭에도 들렸다. 그리고 그 옆, 전통다원에서 오미자차를 한 잔 들이키니 온 세상이 달달한 시원함에 마쉬멜로처럼 말랑말랑해진 기분이다.

 

 

은행나무의 영험함과 5월의 화창함을 가족들과 느끼며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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