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건축이야기

(건축이야기36) '층간소음'에 관한 불편한 진실

budsmile 2012. 2. 29. 16:46

1. 나는 군복무를 춘천에서 했다. 춘천역앞 '캠프페이지'.....흔히 말하는 '카투사'였다. 내가 있는 부대는 횡성의 '캠프이글'과 함께 남한내 미군의 공격용 헬기부대(주력은 코브라, 후에 아파치로 바뀌었다) 2곳 중 하나였다. 그만큼 필드에 나가는 작전이 많았다. 한국군과 합동작전을 할 때도 많았는데 자대배치받고 처음 받은 '팀스피리트 훈련'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필드에서 미군의 아침식사는 여느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콘푸레이크, 베이컨 등 대부분 인스턴트인데, 유일하게 현장에서 요리를 직접 하는 것이 달걀이다. 달걀요리는 항상 먼저 주문을 받는다. sunny-side-up(노른자를 깨지 않고 한면만 익히는 것), over-hard(완숙 후라이), omelette, scramble 등 요리방법이 다양하다. 그런데 그날 아침 주문을 받고 있는 병사가 바로 대대장을 비롯한 간부장교들이 아닌가? 앞치마를 두루고 능숙한 솜씨로 주문을 받아 요리한 다음, 사병들의 접시에 얹어주며 덕담 한 마디까지......반면에 한국군 장교들은 야전식당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당번병이 대신 나와 식판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만 봤을 뿐이다. 속된 말로, '계급'이 깡패인 군대에서 '계급'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시선이 있음을 느꼈다.

 

서양인들에게 '계급'은 decision-making을 누가 할 것이냐 하는 기준으로 상급자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계급'은 하급자의 사생활 희생을 포함해 '하인'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관계까지 포괄한다. 토지(중세)에서 자본(근대)으로 권력이동의 과정 속에 신세력으로 성장한 부르조아들은 자본형성을 위해 토지에 얽매인 농노해방의 필요성을 깨닫고 혁명을 통해 이를 실현했지만, 서양과 달리 외세에 의해 신분철폐를 강요당한 우리로서는 아직도 '계급'을 '신분'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신분제가 폐지된 지 100년도 더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스스로 만들어 낸 상류층에 편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어떤 좋은 거라도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바뀌지 않은 것은 무의미해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

 

2. 공동주택의 층간소음 문제는 이제 새로울 것도 없다. 다들 노이로제에 걸린 듯, 소음을 줄이기 위해 바닥두께는 갈수록 두꺼워지고 새로운 차음구조를 속속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소음을 완벽히 차단해주는 구조는 이 세상에 없다. 우리는 규제를 강화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이제는 층간소음이 원인이 되어 살인까지 일어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일본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일본의 주택들은 우리보다 바닥도 얇고 프리패브(조립식 건축)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아 층간소음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지만,  일상적인 소음에 까지 항의하는 주민들은 의외로 적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북쪽의 추운 지방 일부를 제외하고는, 집을 지을 때 통상 채를 나눠서 쓰임새를 구분했다. 안방과 사랑방은 각기 독립된 채로 만들어지고, 그 중 은밀한 사적공간인 안채는 가장 깊숙한 곳에 두어 프라이버시를 보호했다. 채와 채 사이에는 담장이 있거나 마당이 있어, 의도적이지 않는다면 특정 방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로 인해 다른 방에서의 생활이 방해받지 않는다.

 

<남산한옥마을 전경, 출처: www.cosmojin.com>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우리처럼 추위를 피하기 위해 무거운 흙으로 채워진 지붕이 필요없었던 일본인들은 굳이 채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즉, 하나의 지붕 아래 모든 방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집을 지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그 내부를 한덩어리로 터진 거대한 마루처럼 사용하다가, 밤이 되면 천장에 매달아놨던 문을 내려 방과 복도를 구분지었다. 이러다보니 방들끼리는 서로 접하게 되었고, 옆방에서 사랑을 나누는 소리까지 다 들리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다른 방에서 나오는 소리에 스스로 무감각해지도록 훈련을 받는다. 프라이버시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보호하기보다, 개개인의 규범 또는 사회의 암묵적 합의로 지켜낸 것이다.(우리네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못할 수도 있겠다...들은 것을 못 들은 체, 아니 정말 못 들은 것으로 하라니....^^) 

 

<일본 니조조 전경, 출처: www.psy.ritsumei.ac.jp>

 

공동주택은 근 50년만에 갑작스레 시대의 보편적 주거가 되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한 집에 모여산다는 발상은 애초 우리민족의 머릿속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편리함 때문에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아직 그 속에 살고 있는 거주자들은 우리가 수백년 익숙해져왔던 (채가 나뉘어진)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윗집의 아이들이 조금 쿵쿵거리기라도 할라치면 애들 교육 잘 시키라며 쓴소리하고 집이 잘못 지어졌다며 투덜거린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마치 단독주택에 사는 양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고, 음악을 크게 틀고, 새벽에 피아노를 치고, 써라운드 시스템으로 야밤에 영화를 즐긴다.

 

3. 마치 패륜범죄가 늘었다고 '효도법'을 제정해 불효자식에겐 벌금이나 징역을 물리겠다고 하는 것은 누가봐도 우습지 않은가? 공동으로 모여사는 주택에서 단독주택만큼의 환경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며 지나친 욕심이다. 또한 이웃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멋대로 생활하는 것도 꼴불견이다. 그런 분들은 아파트에 살지 않는 것이 차라리 본인의 정신건강과 타인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는 새로운 규범이 필요한 법이다. 일본인들처럼 들은 것을 못들은 척 할 필요는 없지만, 공동주택에서는 자신만의 프라이버시 만큼 남에 대한 넉넉한 이해와 배려도 함께 요구된다는 것을 모두가 함께 느끼는 것이 먼저 아닐까?

 

건축은 거주를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제공할 뿐이다.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몫이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채웠느냐에 따라 그 공간은 포근할 수도, 차갑게 변할 수 있다. 오늘도 그저 규정에 따라 바닥을 두껍게 만들고는 있지만 층간소음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그런 '공동주택의 기본 에티켓'이 아닐까? 주거환경은 변했지만, 정작 우리는 변화를 거부하면서 그저 애궂은 '건축물'에 화풀이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단순히 물리적 구조체만을 '공동주택'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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