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smile 2012. 1. 10. 12:00

장장 3시간 10분의 대작 뮤지컬........조로의 이야기는 이미 어린시절부터 익히 들어왔던 배트맨류의 영웅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다소 길고, 약간은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조승우의 역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애드립, 그리고 노래는 일품이었고, 스페인풍의 플라멩고와 탭댄스는 이국적이고 다채로왔다.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초기 스페인인들은 돈알레한드로의 뛰어난 지도력 하에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아들 디에고는 근엄과는 거리가 먼 자유분방한 청년이고 그가 사랑한 루이자는 부모를 여윈 후 돈알레한드로가 거둔 친딸같은 숙녀다. 디에고 유모(지금은 죽고 없는)의 아들, 라몬은 돈알레한드로 밑에서  디에고와 형제같이 지내며 군인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청년이다.

 

돈알레한드로는 디에고를 스페인 군사학교로 보내 교육을 시키려 한다. 하지만 5년 후 루이자가 스페인으로 건너와 그를 찾았을 때 디에고는 군사학교를 탈영해 이네즈라는 여자가 이끄는 집시무리에서 마술사를 하는 유머러스한 청년으로 변해있었다. 같이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자는 루이자의 청을 거절한 디에고는, 그러나 아버지가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며 라몬이 권력을 틀어쥐고 폭압정치를 자행하고 있다는 루이자의 말에 마음을 돌린다. 이네즈를 비롯한 그의 집시 친구들도 같이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캘리포니아에서 루이자의 말이 사실인 것을 확인한 디에고는 돌아온 탕아 역할로 라몬에게 빌붙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라몬을 안심시키는 한편, 밤이면 가면을 쓴 조로로 변신해 시민들을 돕고 그들에게 정의를 위해 싸울 것을 선동하는 혁명가가 된다. 하지만 디에고의 꾐에 빠져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네즈를 잃고, 마지막엔 자신도 포로로 붙잡히고 만다. 하지만 이네즈를 짝사랑했던 라몬의 심복, 가르시아가 사실은 라몬에 의해 감금되어 있던 돈알레한드로를 탈출시켜 조로로 변장시킨 다음 라몬과 루이자의 강제결혼식에 데리고 나오고, 이를 알게 된 라몬이 당황하는 사이 디에고가 등장해 마지막 결전을 치르게 된다.

 

마치 연극처럼 대화가 많은 뮤지컬은 조로의 재치있는 행동과 유머로 연방 웃음을 터지게 만든다. 귀에 박힌 히트곡 넘버는 없지만 폭압을 받는 여인네들의 소복(?) 시위 장면이나 동굴에 피신한 루이자와 조로의 대면장면은 장중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조로가 가르시아에게 여자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나 루이자의 욕실에서 마주친 조로와 루이자의 코믹스런 조우장면은 달콤한 사랑이야기를 느끼게 해준다.

 

이 극의 가장 기본은 '권선징악'이다. 공식처럼 선이 악을 응징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일말의 자비는 없다. 라몬은 뼛속까지 악으로 상정되고 조로는 그 악을 물리쳐 민중을 구해내는 영웅이다. 진부하고 흔해빠진 헐리우드류의 영웅담이다. 갈등구조 역시 선과 악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삼각관계? 아니다.(라몬-루이자-디에고, 이네즈-디에고-루이자의 삼각관계가 보이지만, 그리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진짜 갈등은 디에고와 조로사이의 갈등이다.

 

라몬에 빌붙은 디에고에 실망한 루이자는 혜성처럼 등장한 조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주민학살을 피해 동굴에 피신한 루이자에게 조로가 찾아오고, 둘은 서로에 대한 연민을 노래한다. 루이자는 그 감정을 못 이겨 조로의 가면을 벗기려 했지만 조로는 거부한다. "그냥 존재만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가 되뇌이는 독백은 극 전체에 걸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마스크를 통해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던 디에고......하지만 민중들은 그 가면속에 숨겨진 실제 인물이 우리의 평범한 이웃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버린다면......그래도 민중들은 그를 자신들의 영웅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마스크로 형상화된 이미지를 사랑한 루이자가 가면을 벗어버린 디에고를 과연 조로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마치 '미네르바'가 사이버 영웅이 되었다가, '전문대졸'이라는 학력과 평범한 그의 인생이 공개된 순간 대중들의 환상이 깨져버렸듯이 말이다. 이제 어느 누가 그가 쓴 글을 예전의 미네르바와 같은 무게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벌거벗고 태어나지만, 그 위에 옷을 입히고 악세사리로 치장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신분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나간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을 우리가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우연히 만나게 될 때 뻘쭘해지는 것은, 그래서 당연할 지 모른다. 신분표상이 없어진 상황에서 신분을 재구성해야 하는 어색함......그래서 조폭들은 자기 몸에까지 문신을 해대는 것일까?

 

마스크와 이미지가 많이 활용되는 곳은 아마도 정치판일지 모르겠다......각각의 사람들은 누구나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정치판에서는 그 중 특정 이미지를 찾아내 덧씌우는데 능숙하다. 그렇게 획일화된 이미지로 각인된 사람은 공격하기도 쉽고, 이용하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몰락시키는 것도 쉽다. 교육부장관이 대학생 집회에 뜬금없이 들어가 밀가루 세례를 받는 순간, 대학생들은 졸지에 패륜집단으로 매도된다. 집회의 순수성이나 절박성 따윈 더이상 논의되지 않는다. 남들이 만든 이미지의 덫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때론 꼭두각시의 춤을 추기도 해야 한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평소처럼 자신의 임무를 다하다 순직한 경찰 또는 소방관은 단순한 뉴스거리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정부와 여당이 정치적으로 몰린 곤란한 상황에서는 빅뉴스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은 단숨에 영웅의 자리를 꿰찰수도 있고,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된 의사자로 추앙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살아남은 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어이없게 죽은 사람 혹은 무고한 사람을 영웅이나 혹은 악당으로 만드는 것도 흔한 일이다. 과거 드레퓌스 사건이 그랬듯 말이다.

 

결국 조로는 마스크를 벗고 디에고로 돌아와 세상사람들과 루이자의 인정을 받는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법이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 오히려 극에서는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덧씌어진 가면을 따라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만 한다......조로가 되지 못한 이 세상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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