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35) 커진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1. 지금도 좋아하지만, 젊은 한때, 락음악에 미쳐있을 때가 있었다. 처음엔 강렬한 비트와 사운드에 매료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해못할 가사가 한 둘이 아니다. 가령, 그룹 이글스(Eagles)의 'Hotel California'에 나오는 '1969년'이 도대체 뭘까 고민했었는데, 1969년이 A.S. Lavay가 사탄경(Satan Bible)을 펴낸 해이며 가사 중 '1969년부터 포도주(성령을 의미)를 더 이상 팔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더이상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를 알면 또 하나가 궁금해지는 법! 사탄경은 도대체 뭔가 싶어 봤는데, 바로 알레이스터 크로울리(Aleister Crowly)라는 사람의 영향을 받아 씌어진 책이었다. 맞다! 바로 랜디 로즈의 현란한 기타솜씨로도 유명한 오지오스본(Ozzy Osbourn)의 곡 'Mr. Crowly'의 주인공이 그다.(그는 비틀즈와 마이클잭슨의 앨범자켓에도 나오고, 레드제플린의 지미페이지와 앨리스 쿠퍼, 블랙싸바스 등이 공공연히 정신적 멘토로 언급했던 대상이었다.) 그는 또 프리메이슨 계보를 논할 때 꼭 빠지지 않는 사람이거니와,(다빈치코드로 유명한 댄브라운의 최신작, '로스트 심볼'에서도 언급된다!) 최근에는 투탄카멘왕의 무덤 발굴자들이 연쇄 죽음을 맞이한 '파라오의 저주'가 사실은 크로울리와 연관된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서양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단아 중 한명으로 볼 수 있다.
락음악이 원래 히피문화에서 태동하였고, 히피는 기존 문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저변에 갖고 있었기에, 당시의 주류문화인 기독교문화가 조롱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건 이해할만 하다. 그런데 그 표현방법도 가지가지.....가장 흔하게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백워드매스킹이란 기법이다. 말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말을 반대로 삽입해 놓으면, 판을 거꾸로 돌려야 제대로 된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다. 가령 '도그시나타스(dogsinatas)'라는 가사는 거꾸로 들어야 '사탄이 신이다(Satan is God)'라는 메시지가 완성된다. 거꾸로 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메시지.....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때로 모든 것을 거꾸로 볼 필요도 있다.
2. 왜 교육수준도 높아졌는데 사람들이 길거리에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자연스럽게 버릴까? 아파트단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주민은 왜 한명도 없을까? 왜 스페인 코르도바의 골목길처럼 주민들은 아파트 발코니 또는 담장에 예쁜 꽃들을 내놓아 자신의 주거공간을 꾸미려하지 않을까? 이게 단순히 교육의 문제이며, 소득수준의 차이일까? 디자인에 대한 감성이 부족해서이고, 아름다움이 뭔지 몰라서일까?
나는 이에 대한 대답을 고루한 지식인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거꾸로 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판잣촌을 밀어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고, 넓직한 도로를 가진 신도시를 만들고, 재래시장을 허물어 거대한 마트와 백화점, 거대한 멀티플렉스 극장과 체육관을 만들어 놓고는, 도시가 과거에 비해 한층 현대적이고 세련되어 졌다고 믿는다. 과연 진짜 그럴까? 사람들도 그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되어 졌을까? 도시는 정말 우리가 가진 생각대로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을까? 왜 그러면서도 우리네 도시들은 특색이 없고 서양의 도시들에 비해 품격이 낮다고 공공연히 말하는가?
답이 될만한 것 중 내가 찾은 것은 바로 우리네 도시공간 구조이다.
(코르도바 유대인지구 골목길 전경, 출처 : http://pixdaus.com)
3. 유럽에 여행을 가면, 우리가 즐겨찾는 곳들은 대부분 궁궐, 성당 등 거대공간들이다. 오밀조밀한 거리의 모습과는 대비되어 압도적인 권력의 힘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양식사조도 대부분 이들 공간에 붙여진 것들로, 실제 주택이나 학교같은 소규모 건축물들이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은 르네상스 이후 대부호들의 별장이나 도서관(아마 효시로 치자면, 팔라디오의 빌라나 미켈라젤로의 라우렌티안 도서관이 아닐까?)부터이다.
거대공간들은 권력의 대표이미지로서 국가가 직접 건설하고 관리하며 최고의 장인들로 하여금 꾸미게 했던 것이니 만큼, 시대적 패션감각을 선도하는 양식사조로 해석될만하다. 거대공간들은 또한 인간적인 기준을 넘어 장대하고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이 즉흥적으로 만들수도 없는 것이거니와, 그 상징성으로 인해 그간에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조각, 회화, 건축 등 동시대의 가장 잘 나가는 예술가들의 전성기적 기량을 한 장소에 집약하여 스펙터클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한마디로 지금 이 순간을 대표하는 시간의 결정체로서의 협업작품이 되는 것이다.
거대공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도시공간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건물들과 공간들로 단위가 잘게 쪼개져있다. 여기는 양식사조라기 보다는 '민속', '토속'의 개념으로 해석되는 공간들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최소한의 단위로 공간을 만들고, 그 중 일부는 다른 사람과 일부를 공유하며 도시를 구성해나간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어느 한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켜를 두고 계속 그 예술적, 기술적 성과를 축적해 나간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기자기한 공간은 친근한 개인적 공간으로, 거대한 공간은 (이미 완결된) 공공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사적인 공간이라 느껴지는 곳에는 사람들이 뭔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불어넣고 싶어 꾸미고 정리하려는 추동력을 갖는 반면, 휴먼스케일(인간적 척도)을 넘어선 공간에는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개입하는데 주저하게 된다.
더 나아가 거대공간은 당연히 누군가가 청소하고 관리하고 꾸며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내가 세금을 내는데, 혹은 돈을 주어 관리자를 고용하고 있는데 굳이 내가 나서서 공간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사유재산 증식을 위해서라면 피땀 흘려 일하지만, 공동소유 재산이라면 게을러지는, 사회주의의 가장 큰 폐해를 일으킨 원칙이 여기서도 적용될 줄이야)
(거대 공공공간과 생활공간이 잘 어우러진 파리시내 전경, 출처 : http://pixdaus.com)
4. 어느샌가 우리 도시는 거대 공간들로 점령당했다. 오밀조밀한 주택가는 모두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바뀌고, 창고형 마트와 골프연습장 등이 도심에 파고들어왔다. 유럽 도시들의 성당, 궁궐 등과 같은 거대공간들을 아파트단지와 마트 등으로 번안한 느낌이다. 귀족권력이 자본권력으로 바뀌면서 거대공간의 대부분이 상업시설화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아기자기한 우리의 개인적 공간은 집 속으로 꽁꽁 숨어버렸고, 집밖을 나서는 순간 모든 것은 공공공간이 되어버렸다.(심지어 아파트단지내 조차도 말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 동네를 꾸밀 여력을 철저히 빼앗아버린 도시......결국은 도시를 아름답게 하겠다며 또 공공(정부)이 칼을 빼 휘두른다. 그러면서 문화회관이며 체육관, 청사와 같은 거대공간들만을 또 양산해내고, 멋진 건물들에는 상을 주며 디자인을 진흥해보려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저 남의 나라 얘기가 되어 버렸다.
아름다움까지 지배하려는 공공.....그러나 도시는 사람들의 생활터전인 만큼, 도시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생활로부터 나와야 하는게 바람직하다. 도시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움이야 말로 오래 가고 진정한 감동의 깊이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불도저로 밀어 크고 넓어진다고 도시가 아름다워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