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되지만 재미있는, 그래서 여행!(2) - 배려편
5. 시칠리아 일주를 할 때다. 나는 시라쿠스(Syracuse)에서 로마로 가는 밤기차를 타고 있었다. 그날따라 왠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나는 6인용 컴파트먼트 중 한 자리에 겨우 앉았다. 나머지 자리는 시칠리아 중년의 아저씨와 그 아들, 이태리로 여행 온 3명의 포르투갈 아가씨들이 차지하였다. 오늘은 발뻗고 자기 힘들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시칠리아 아저씨가 포르투갈 아가씨들에게 수작을 건다.(하여간 남자들이란!!) 점점 분위기가 달아오르더니 이제 나에게까지 질문공세다. 꽤 수다스러운 아가씨들도 한몫 거든다. 급기야 그 아저씨, 처음 기차탈 때 선반에 올려놓았던 커다란 항아리 2개 중 1개를 내려서 개봉을 한다. '술이닷!!!' 그것도 정통 시칠리아식 포도주...ㅎㅎ....로마에 있는 친척집에 가져가는 선물이었지만, 그 중 하나를 그날 밤 우리 모두 떠들며 비워버렸다......아~ 얼마만의 술이련가......모두들 술에 얼큰히 취해 웃고 떠들고 정신없다. 게다가 노래까지 돌아가면서 부르니, 박수치고 난리다. 마치 MT가는 경춘선 기차를 탄듯, 시칠리아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즐거운 밤이었다.
(시칠리아섬의 유적지도, 출처 : www.siciliaontheroad.it)
6.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다. 나는 한낮의 루앙프라방 거리를 쏘다니고 있었다. 태양이 뜨거운 탓인지 사람들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 사원앞을 지나칠 때였다. 갑자기 승복을 입은 노승이 마치 꿈속에서와 같이 불현듯 사원입구에 나타났다. 숨은 헐레벌떡이는데, 양손은 가지런히 모은 자세였다. 그리고는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발견하자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얼떨결에 무슨 도움이 필요한가 싶어 뛰다시피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아무말없이 빙그레 웃으며 두 손 위에 놓여진 뭔가를 내 앞에 내밀었다. '망고'였다. 정말 노랗게 익을대로 농익어 배가 터져버린 망고......그는 나에게 먹어보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최면에 걸린듯 그에게서 망고를 받아들고 한입 베물었다. 기가 막힌 맛이었다.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망고는 처음 먹어봤다. 짐작컨데, 사원안 망고나무에서 잘 익어 떨어진 망고를 갓 발견한 노승이 누군가에게 보시할 요량으로 헐레벌떡 가지고 나온 것이리라......그는 내가 그 망고를 다 먹어 해치울 때까지 그저 가만히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 때 내가 먹은 것은 부처같은 그들의 마음이었다. 지금도 '라오스'하면, 달콤한 망고향이 입안을 감도는 것만 같다.
(루앙프라방 전경, 출처 : buddien.files.wordpress.com)
(라오스 승려들이 아침 보시를 받는 풍경, 작년에 후배가 찍어온 사진에서 인용)
7. 마케도니아를 여행할 때다. 나는 수도 스코피에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도라고 하기엔 정말 조그만 도시다. 날씨도 더운데다 조금 피곤해서 쉬엄쉬엄 둘러보고 있었다. 마침 다리도 아프기에 길가의 그늘진, 조그만 화단에 잠시 앉아 쉬고 있었다. 10미터 쯤 앞에는 차가 세워져 있었고, 그 앞 빵집가게에서는 배달을 가는지, 주인아저씨가 열심히 물건을 차에 싣고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주인아저씨가 가게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가지고 나와 차에 가다말고 나에게 온다. 그러고는 나에게 그 비닐봉지를 건네주고는 말없이 다시 가게로 들어간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는 상황을 정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비닐봉지 안에는 정말 빵이 한아름 가득 들어있었다. 나에게 이걸 왜 주었냐고 물어봐야 하는지, 그냥 감사하다고 말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고 있는데, 이번엔 이 아저씨, 가게에서 스프라이트 캔 하나를 들고 나와 역시 나에게 건네주고는 차를 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내가 불쌍하게 보였나?....하지만 마케도니아를 여행하는 내내 동양에서 온, 보기 힘든 이방인에게 조건없이 베푸는 호의를 줄곧 받을 수 있었고, 그네들의 맑고 고운 천성을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암튼 그 때 마신 얼음같이 차가웠던 스프라이트의 맛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같다. 아울러 '스프라이트'라 쓰고 '마케도니아'라 읽는 버릇 역시 평생 갈 듯하다....^^
(스코피에 구시가 전경, 출처 : www.globeimages.net)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