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라사(4)_드레풍사원과 노블링카
아침에 일어나니 밝은 햇살이 눈부시다. 파란 하늘과 상큼한 공기에 기분까지 좋아지는 날이다.
단골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는 - 이제 주문하지 않아도 주인집 아저씨가 내가 항상 먹는 아침메뉴를 척척 가지고 온다 - 라사 근교에 있는 드레풍사원으로 출발한다. 시내버스로 약 15분을 달려 시 외곽 티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이 덮힌 바위산 아래 내린다. 여기서 대기중인 3륜차를 다시 타고 사원입구까지 올라간다. 3륜차 엔진 소리가 어찌나 시끄럽던지 조용한 티벳이 들썩거린다.....
입구에 흩날리는 오색깃발......사원은 대학까지 거느린 제법 큰 규모였지만 간덴에 비해 매우 오밀조밀하게 모여있어 돌아다니기는 훨씬 수월했다. 너무 이른 시간인지 관광객들도 보이지 않는다. 고즈넉한 산사에 오직 새소리와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전부이다. 간혹 마주치는 라마승들과 순례객들이 정적을 깬다.
드레풍사원은 나에게 페루의 아레키파수도원을 연상시킨다. 한 단위의 클러스터가 완벽하게 승방, 부엌, 화장실, 그리고 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클러스터들이 여러 개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중심엔 대법당이 있었다 역시 산 위에 있으니 3, 4층이 되는 각각의 건물들은 내부가 마치 미로와 같다.
사원의 제일 높은 곳, 저 멀리 일자형으로 길게 보이는, 차양이 쳐진 건물이 바로 대법당이다.
대법당의 위용......사진은 흐릿해서 잘 나오지 않았지만 마침 예불시간이라 모든 승려들이 함께 모여 불경을 외는 것이 장관이었다.
작은 포탈라로 부를 만한 곳이었다. 실제로 제5대 달라이라마가 포탈라궁을 짓기 전까지 이 곳을 궁으로 활용했으니 양식과 모습이 흡사한 것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드레풍사원은 간덴사원, 세라사원과 더불어 티벳 3대 사원으로 불린다. 문화혁명 시기 이 곳도 그 광란을 피해가진 못했는데, 최근 티벳 유혈사태로 많은 피해를 봤다고 한다.
사원 내부의 화장실......갑자기 드레풍사원에서의 황당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화장실도 공동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아마 우리네 대중목욕탕을 본 서양인들의 충격도 똑같으리라....
사원에서 바라본 주변 풍광들.....저 멀리 설산도 보이는데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산들은 골격을 뽐내며 푸른 햇살에 그 장대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큰 길까지 내려올 때는 3륜차를 이용하지 않았다. 조그마한 점포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는 호젓한 시골길을 걷는다. 지나치는 마을 사람들이 웃으며 말을 건네고, 난 그 말을 알아듣진 못하지만 정성껏 '타시텔레' 인사를 건넨다. 그네들의 웃는 얼굴을 보니 어느덧 라사에서의 마지막 날이 아쉬워진다.
이제 여름궁전 노블링카로 간다......포탈라궁이 겨울궁전이라면 '보석의 정원'이란 뜻의 노블링카는 달라이라마 7세가 세운 여름궁전이다.
여름궁전은 화려하고 섬세한 티벳 특유의 외관이 인상적인데, 내부 모습은 갖가지 신문물로 장식되어 있어 근대적이다. 인공호수도 있는데 중국인들은 여기에 동물원도 만들어놨다. 창경원이 되어버린 궁궐......힘없는, 역사를 뺏겨버린 약한 자들의 슬픔......
이 곳은 티벳답지 않게 갖가지 화초와 나무들로 가득차있었다. 이 곳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하기 직전에 있었던 곳으로, 그를 보호하기 위한 티벳인들의 민중봉기가 발생했던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의 이면에 티벳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었다. 여전히 티벳인들은 이 곳을 찾은 중국관광객들에게 웃음을 팔며 고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