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마지막)-칠레 산티아고, 발파라이소 그리고 칠로에섬
이스터섬을 다녀온 후 남미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은 칠레 본토에서 보냈다. 수도 산티아고는 꽤 현대적인 도시다. 남미에서는 제일 잘사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물가도 비싸고 브라질에 비해 기반시설이 훌륭한 것같지도 않다. 아르헨티나와는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뭐랄까...좀 더 건조하고 딱딱한 느낌이랄까......하지만 사람들은 참 순박하고 정이 많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 바라본 산티아고 시내다. 스모그가 심한 도시라 사진도 뿌옇지만 안데스산맥이 설봉을 이고 칠레의 기다린 국경선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시내중심가는 차분하면서도 걷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그리 볼만한 게 많지는 않았지만 더운 날씨에 쉬엄쉬엄 산책하는 기분으로 시간때우기는 그만이다.
대통령궁인 모네다궁이다. 과거 1970년대 사회주의자로서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아옌데가 미제 무기로 무장한 피노체트 쿠데타세력에 의해 사망한 곳이다. 그 때 모네다궁도 로켓포 공격에 유실되었다. 지금 보는 것은 그 이후 다시 재건된 것이다. 참 신기한 것은 대통령궁이 이렇게 일반인에게 개방된 장소라는 것이다. 보안과 경호는 어떻게 하는지..우리 같으면 데모꾼들로 항상 시끌벅적한 곳이 될텐데....
산티아고가 칠레의 법상 공식수도라면 발파라이소는 칠레인들 마음속의 수도이다. 실제로 정부부처는 산티아고에 있지만, 국회의사당은 이 곳 산티아고에서 차로 1시간 40여분 떨어진 발파라이소에 있다. 칠레 제1의 무역항으로 언덕위에 건설된 도시......무질서해보이지만 항구 특유의 활발함이 온 몸 가득 느껴지는 발파라이소는 중심역사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역사지구는 마치 우리의 달동네처럼 나즈막한 단독주택들이 밀집해 있는데 마치 멕시코에서와 같이 형형색색의 페인트로 도시가 컬러풀하다. 구릉이 많아 주로 사람들의 교통수단은 구릉위와 항구를 연결하는 후니쿨라를 이용한다. 아래 사진은 후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며 찍은 사진이다.
마치 우리 과천정부청사를 생각나게 하는 발파라이소의 청사 전경....해군본부라고 하던가....암튼 특별히 볼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닷바람을 쐬며 항구를 돌아다니다 멋진 해변식당에서 맛있는(?) 해물찌개도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최남단 푼타아레나스까지 가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하고 대신, 산티아고와 푼타아레나스 중간 지점에 있는 유명한 칠로에섬에 갔다. 야간버스 타고 배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펭귄을 볼 수 있다는 국립공원(하지만 실제 펭귄은 보질 못했다...)도 있고, 멋진 교회들도 많은 곳이다. 국립공원은 울창한 밀림 같은 곳이었는데 늪지대가 많아 하이킹 코스에 모두 목재판을 깔아놓아 돌아다니기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비를 맞으며 처량하게 돌아다니며 빵뜯어먹던 아픔이......^^;;;
특히 이 곳의 자랑은 교회들이다. 교회는 모두 목조로 만들어졌는데 그 모양과 구조가 똑같은 게 하나도 없고 특이한 독창성을 인정받아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여행을 마치고 산티아고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다시 페루의 리마를 거쳐 LA까지 날아갔다. 리마까지 두 시간이면 갈 거리를 나는 남미를 횡단해 두 달걸려 온 거라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
다시 LA에서 서울까지 지구를 반바퀴돌아 가는 시간은 총 30시간 이상이다. 지루한 시간도 달랠겸 그동안 여행경비를 정리해봤는데 약간 눈에 띄는 특징이 분석된다. 두 달간 쓴 생활비가 150만원이니까 하루 2만 5천원꼴이다. 여기엔 식비, 숙박비, 교통비, 입장료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사용처를 보니 국가별로 약간 차이가 난다. 페루는 다른 비용에 비해 관광지 입장료가 압도적이다. 나스카, 마추픽추 등 굵직굵직한 유적지에 뭉텅이 돈이 쑥쑥 빠져나갔다.
브라질은 교통비가 압도적이다. 비싸긴 하지만 버스시설은 정말 훌륭하다. 식비와 숙박비도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았다.(특히 브라질의 슈라스코는 가난한 배낭족에겐 최고의 메뉴다. 배터질때까지 무한리필되는 부위별 고기구이~)
칠레는 숙박비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만족도는 저렴한 브라질 숙소보다 훨 못하다는 게 내생각이다. 교통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역시 브라질에 비하면 시골 완행버스같은 느낌......
볼리비아는 모든게 쌌지만 모든게 2% 부족하다. 하지만 그 부족함은 사람들이 메워줬다. 그리고 오히려 불편함 속에서 여행의 참맛은 나오는 법이다.
이제 남미에서의 두 달이 끝났다. 남미여행은 어떻게 가도 참 독특하다. 버스, 기차, 비행기, 배 등 인간이 만든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고, 사막/폭포/밀림/평원/고원/해변이라는 지구상의 모든 자연환경과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또한 기이한 유적지들은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하는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일상에서 벗어나 지구상 어디선가 점 하나가 되어 이리저리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언제나 짜릿한 흥분을 준다. 다음엔 또 지구별 어디에서 헤메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