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8) - 페루 쿠스코(Cuzco)_첫번째
마추픽추에서 돌아온 다음날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한결 낫다. 이제 고산증세는 완전히 극복된 듯하다. 마추픽추에 가기 전에 쿠스코 시내 아르마스 광장 가까운 곳에 미리 숙소를 예약해놨었는데 아침식사도 제공해주고 주인아줌마도 매우 친절하다. 내일 신성한 계곡 투어를 할 예정이라고 말하니 기어이 나의 손을 잡고 자신이 잘 알아 믿을만한 여행사라면서 아르마스광장에 있는 제법 그럴듯한 여행사로 나를 데려가준다. 16개 쿠스코 근교 잉카 유적지를 입장할 수 있는 데이티켓을 18달러에 샀다.
오늘은 하이킹코스로도 유명한 4개 유적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유적지로 가는 길은 마치 스위스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고원 특유의 파랗고 청명한 하늘(난 '높다란 파란 하늘'이 우리나라 가을의 전유물만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정말 깨질듯이 선명한 초록빛의 산과 하얀 구름들.....맑고 신선한 공기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걸었다.
마침내 도착한 첫번째 유적은 땀보마차이(Tambomachay)......
땀보마차이는 과거 잉카의 왕들이 제사를 지내기 전 목욕을 하던 신성한 장소이다. 건기나 우기나 상관없이 일정한 양의 물이 지금도 흐르고 있는데, 이 물의 근원이 어디인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는 신비의 샘이다.
자세히보면 샘을 둘러싸고 벽이 세워져 있는데 벽 중간중간에 움푹 들어가게 만든 곳이 눈에 띈다. 마치 신상이라도 조각해서 넣어뒀을 법한 저 곳은 사실 음향효과를 위한 잉카인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건축기술이다. 사람이 그 앞에 서서 소리를 지르면 공명이 되어 소리가 멀리까지 웅장하게 퍼져나가게끔 설계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 벽은 역시 잉카 특유의 기술적 섬세함이 엿보인다. 바늘 하나도 못 집어넣을 듯 촘촘히 끼워맞춰진 돌들에서 그네들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다음 유적지는 탐보마차이에서 조금 내려가면 나타나는 푸카푸카라(Puca Pucara)이다. 붉은 요새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붉은 색 돌들이 작지만 옹골진 건물을 만들고 있었는데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 드나드는 여행객들이 쉬거나 그네들을 감시하기 위한 초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푸카푸카라에서 쿠스코방향으로 4-5km를 내려가다보면 켄코(Quenqo)라는 유적지가 나온다. 케추아어로 '미로'라는 뜻인데 전체가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특이한 유적지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바위같은데 위쪽과 아래쪽에 난 굴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다닐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희생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추정된다.
지하 제사장소로 들어가는 입구
바위산 위에는 뭔가 돌기둥으로 만들어진 무언가가 있었을 법한데....기록이 없는 유적은 온갖 상상력만 자아낼 뿐이다.
과거 푸마의 조각이 새겨져있었다는 유적지 입구의 돌기둥......
숨바꼭질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정말 '미로'로 구성된 유적이었다.
다음은 그 유명한 사크사이와만(Sacsayhuaman) 유적......쿠스코 제일 높은 곳에 세워진 성채다. 멀리서보면 가운데 운동장을 중심으로 양 옆에 세겹으로 세워져있다. 그 중 좌측에 세워져 있는 것이 비교적 형태가 온전하다.
이곳에선 6월말에 해마다 태양신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오니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더니 바람이 불고 잠시후엔 우박이, 정말 내 주먹만한 우박이 사정없이 쏟아진다. 나무한 그루 없는 곳에서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다른 배낭객들과 30여분간을 같이 있어야했다. 우박, 실제로 맞으니 정말 아프다....
성채로 올라가는 입구
성채 입구에서 바라본 바깥......
이건 우측에 있는 건데 좌측에 비해선 많이 훼손되어 있다.
열병하듯 서있는 성벽들이 듬직하다.....
유적지 역시 바늘하나 뚫지 못할 정도로 촘촘히 쌓여있다.
이런 기술을 가진 잉카인들의 나라가 너무 쉽게 스페인에 무너져내린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네들을 무너뜨린 것은 무력을 막지 못해서가 아니라 결국 내부의 분열과 권력욕때문이었다.
암튼 날씨가 흐린탓에 사진이 전반적으로 어둡게 나왔지만 그 때의 웅장한 기운만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성채에서는 쿠스코 시내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다. 마치 스페인의 한 마을을 보는 듯......다시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가운데 초록색 광장이 중심가인 아르마스 광장이다..
이제 기분좋은 트랙킹을 마치고 내일은 성스런 계곡 투어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