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5) - 페루 마추픽추(Machu Picchu)_첫번째
아레키파에서 저녁 8시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 5시 45분경 쿠스코 버스터미널에 멈춰섰다. 버스안에서 잠을 설쳤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당연했다. 해발 2,300미터에서 해발 3,800미터까지 무려 1,500미터를 이동했으니 약간의 고산증세도 있었을 테고, 아레키파의 온화한 날씨에 익숙해있던 내게 안데스의 서늘한 공기는 간밤에 내린 비와 함께 컨디션을 악화시켰던 것이다. 암튼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설사를 심하게 한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졌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스산한 바람에 나는 한기가 심하게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일단 여장을 푼 나는 따뜻한 샤워를 하고는 바로 마추픽추행 기차표를 끊으러 산페드로역에 갔다.
산페드로역(일명 '마추픽추역')은 구시가 서쪽에 위치한 역이었다. 나는 오르막길로 된 시내를 힘겹게 걸어올라 역에 갔다. 하지만 역에서 마추픽추행 기차를 타는 것은 맞지만, 론리플래닛의 설명과는 달리, 기차표는 시내 남쪽의 아레키파역에서 사야한단다.(무슨 시스템이 이래?) 나는 다시 반대편으로 걸어내려가 표를 예매했는데, 덕분에 피곤한 몸은 고산병에 기어이 걸리고야 말았다.
숙소에 돌아와 이불을 두 세개 뒤집어 써도 마치 열병에 걸린 듯, 오한과 함께 정말 터져버릴 듯 아픈 머리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잠을 잘 수도, 일어나 활동할 수도 없었다. 계속 그렇게 몽롱하게 누워 있다가 이러면 도저히 안될 것같아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켜 근처 식당에 갔다. 가벼운 저녁을 먹고 꼬까차를 연거푸 들이마셨다.
꼬까차는 마약 코카인을 만드는 꼬까잎으로 만든 차다. 물론 마약을 만들기 위해선 다량의 잎이 필요하겠지만 마치 녹차처럼 잎 몇 장을 떨어뜨려 진하게 우려내 마시면 고산병엔 이만한 특효약도 없다. 플래시보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후론 차츰 증세가 호전되어갔다. 여기 사람들은 아예 말린 오징어마냥 조그만 주머니에 꼬까잎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씹고 다닌다.
저녁에 다시 비가내리기 시작했는데 아침엔 날이 개어 있었다. 지금 이 시기 남미는 여름이지만, 안데스는 우기다. 비라도 안오기만을 기대할 수밖에......
산페드로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먼저 높은 고도를 올라가기 위해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방법으로 서로 다른 레벨에 위치한 철로에 차례대로 올라선다. 이윽고 본 궤도에 올라선 열차가 제 속도를 내며 달리니 눈앞에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우루밤바 강을 따라 높은 산과 안개, 옥수수밭과 방목된 소와 양들이 나타나는데 별천지다. 4시간 후 기차는 '아구아 칼리엔테'라는 곳에 도착한다. 우리말로 하자면 아구아는 '물', 칼리엔테는 '뜨거운'이란 뜻이니까 도시이름이 그냥 '온천'이다.
조그만 도시는 겉보기엔 황량했다. 그런데 다시를 건너 그 내부로 들어서자 산등성이 작은 길을 중심으로 오밀조밀하게 식당과 여관, 기념품가게 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무슨 MT온 기분이었다. 그 중 순박하게 생긴 호객꾼과 흥정해 그런대로 깨끗하게 보이는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마추픽추까지는 이 마을 끝에서 다시 버스로 25분을 올라가야 한다. 버스가 아찔한 낭떠러지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올라간다. 대체 어디에 유적지가 있는지 아무리 올려보아도 보이지 않아 궁금하던 찰나, 버스가 매표소 앞에 멈춰선다. 머리를 쑥 내밀어보지만 매표소 너머에도 유적은 커녕 아무것도 있을 것같지 않다.
입구에서서 방금 올라온 길을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버스 한 대 겨우 지나다닐 만한 길인데 두 대가 마주치면 피해가는 게 참 아슬아슬하다.
우르밤바 강 주변의 산들은 모두 가파르다. 대체 이 위에 도시를 건설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그 많은 돌들은 어디서 구했으며, 바퀴를 모르는 잉카인들이 그 무거운 돌들을 어떻게 운반했을까? 덕분에 도시는 스페인 침략자들을 피해 불과 100년 전에야 발견되었고, 유적은 신 세계7대 불가사의에 오르지 않았을까?
매표소를 지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보초병 막사에 오르면 우리가 흔히 사진에서 많이 봐왔던 익숙한 구도에서의 마추픽추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한 눈에 펼쳐진다. 저기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와이나픽추'로 하루 400명으로 선착순 등반이 가능하다. 이번엔 날씨가 많이 흐려서 포기했지만 다음번엔 꼭 도전하리라......
마추픽추는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남측(아래쪽)의 신전 등 신성구역과 북측(윗쪽)의 주거 등 생활구역으로 나뉜다. 그리 넓지 않은 장소였지만 나름대로 자연환경을 요령있게 활용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구조를 지녔다.
더 남측지역을 조망한 모습......이 도시가 언제 어떻게 세워졌고 어떻게 사람들이 사라졌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만, 여기서 발굴된 유골이 여성들이 많아 여사제들의 종교도시라든가, 스페인 침략을 피해 건설된 마지막 잉카도시라는 등의 추측 등만 있을 뿐이다. 안데스엔 발견되지 않은 이런 곳이 또 얼마나 있을까?
날씨는 종잡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안개가 몰려와 시야에서 유적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하였다. 비도 오락가락하고 암튼 구경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유적을 처음 대할 때의 그 설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매표소를 지나면 계단식 경작지를 만나게 된다. 가파른 경사지를 밭으로 가꾸어놓은 그들의 노력에 감복할 뿐이다. 그런데 도시 주변으로 모두 이런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자급자족이 가능했을 듯하다.
다른 각도에서 본 경작지 모습
마추픽추는 돌의 도시다. 작은 조약돌에서 거대한 바위까지 모든 게 돌로 다듬어져 있는데 인공적 구조물이 아니라 마치 오래전부터 여기에 당연히 있어왔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친숙한 느낌이다.
경작지에 있는 일부 복원된 집들......한 폭의 그림같다.
매표소를 지나 보초병 막사에서 원경을 조망한 뒤 여기 테라스를 지나면 드디어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하나의 거대한 인공 피라밋을 보는 듯한 느낌......
저 밭에서는 아마 옥수수와 감자 등을 키웠을 것이다. 여기 옥수수는 고산지라 그런지 품종이 다르다. 알 하나가 엄지손톱만한데, 쪄서 먹는 풍경은 우리와 비슷하다.
여기 세워진 막사들도 모두 돌로 만들어졌는데 지붕은 모두 없어졌지만 박공형태의 지붕모양은 그대로 남아있다. 경사가 급한 것을 보니 아마 비가 많이 오는 모양이다.
벽에서 돌출된 저 돌들은 무얼까 한 순간 고민했는데.....
그건 지붕을 붙들어매기 위한 쐐기돌로 사용된 것이었다. 그런 그들이 바퀴를 개발하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문자가 없었다는데 단순한 매듭체계만 가지고 이러한 기술이 전승되고 도시가 건설되었다는 게 참 신기했다. 없어도 다 사는 방법이 있는 것일까?
계단형 경작지에는 수로 시스템도 잘 구축되어 있다. 산 꼭대기에 사는 그들이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마 물이었을 것이다. 실제 도시내부에서도 샘이 여러개 있었고 아직도 물이 흐르고 있다.
아찔한 곳이지만 이런 곳에 밭은 낸 그들이 참 대단하다.
때론 여기에 라마나 알파카같은 동물들도 어슬렁거린다.
바로 요렇게....털이 복실복실한게 참 귀엽게 생겼다. 요 녀석들은 눈이 참 선하게 생겼다. 낙타와 말의 중간쯤쯤이나 될까? 근데 고기는 약간 질기다...ㅋ
서두가 길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도시 내부로 들어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