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건축이야기

건축이야기(19)-건축공간의 비밀(6) : 건축과 성(性)

budsmile 2008. 7. 7. 12:39

인도에서 제일 인기있는 힌두신은 창조를 담당하는 브라흐마(Brahma), 유지를 담당하는 비슈누(Vishunu) 그리고 파괴를 담당하는 쉬바(Shiva)이다. 그 중에서도 쉬바의 인기는 단연 독보적인데 신전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상징은 단연 ‘링가(linga)’이다. ‘링가’란 남성의 생식기를 형상화한 길쭉한 돌로서 생식과 다산을 나타낸다. 신화에 따르면 아름다운 아내를 잃어버린 쉬바가 자신의 상징을 꼿꼿이 세우고 벌거벗은 채 황야를 방황하는데, 이 모습에 반한 수행자의 아내들이 쉬바의 뒤를 따르게 된다. 화가 난 남편들이 쉬바의 성기가 떨어져나가도록 저주하였지만, 성기가 떨어진 땅에서 큰 화재가 발생해 이를 두려워한 사람들이 쉬바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링가를 숭배했다고 한다. 지금은 인도 전역에 12개의 링가가 모셔져 있는데 신전의 가장 은밀한 부분에 모셔진 링가는 단순한 형태지만 우뚝 솟은 모양이 그 어떤 화려한 장식보다도 공간에 강한 흡인력을 부여한다.

 

<링가의 모습>

 

이집트 신화에서도 저승의 신 오시리스(Osiris)는 질투의 화신인 동생 세트(Seth)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시체는 14조각으로 토막이 된 다음 이집트 각지에 버려지는데, 그의 아내이자 누이인 이시스(Isis)가 뒤늦게 이를 알고 조각을 모으지만 나일강의 물고기가 먹어버린 1조각은 찾을 수 없었다.(그래서 지금도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는다.) 그 1조각은 오시리스의 남근이었으며 이시스는 다른 것을 본떠서 시체를 완성한 뒤 그를 부활시켜 태양신 호루스(Horus)를 낳았다. 이 이야기는 살인(카인)과 부활이라는 근동지역에서 전승되는 오랜 테마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데, 덕분에 오시리스는 비록 죽음의 신이지만 쉬바와 마찬가지로 부활의 상징으로 대접받는다. ‘링가’가 쉬바를 상징하듯이 오시리스의 상징은 역시 남근형태의 ‘오벨리스크(Obelisk)’다. 피라미드 형태의 기다란 거석기둥은 신전 입구와 중요한 장소에 세워져 공간의 중요도를 높여주게 된다.

 

<이집트 신전의 오벨리스크>

 

편평한 대지위에 뭔가를 세운다는 것-인간의 성(性)으로 상징되는 바로 그 행위는 고대로부터 건축의 가장 큰 모티브 중 하나였다. 특히 남근숭배를 위한 기둥모양의 거석은 반듯한 대지에 중심을 세워 강한 집중력과 중심성을 갖게 해준다. 그러한 중심잡기는 원시적으로 보면 돌을 대지에 하나 얹어놓는 단순한 형태로부터 시작되었다. 제우스신이 올림푸스 산에서 동서 방향으로 날려보낸 비둘기가 만난 곳에 세웠다는 그리스 델피(Delphi)의 아폴론신전에는 옴파로스(Omphalos)라는 돌이 모셔졌다. 세계의 배꼽이란 의미인데 그 위에서 피티아(Pythia)라는 무녀에 의해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신탁이 행해졌다. 이렇듯 기둥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우리 한글의 창제원리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델포이 아폴론신탁소의 유적 일부>

 

기둥이 하나가 서있으면 왠지 모르게 그 기둥을 중심으로 하여 회전력이 발생한다. 이것은 마치 거리에서 공연하는 예술가 주위에 사람이 모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동그랗게 동심원 형태를 만드는 것과 같다. 기둥이 두 개가 서 있으면 왠지 그 사이로 통과해야 할 것 같다. 여기에 캐노피같은 천장판이 있으면 그러한 느낌은 더욱 더 배가된다. 어린아이들이 장난삼아 이불 혹은 상자부스러기로 지붕이 있는 천막을 만들거나 무언가 머리 위를 가려주는 공간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기둥이 세 개 이상 일렬로 서 있으면 기둥을 따라서 일정한 흐름이 발생하여 자연스레 길의 방향을 인도하게 된다. 건축형태는 이와 같이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부분을 형상화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기둥 하나가 가진 중심성의 조금 더 발전된 형태는 영국의 스톤헨지(Stone Henge)에서 볼 수 있다. 산 하나 보이지 않는 솔즈베리 평원에 돌로 된 2개의 동심원이 겹으로 서있는 모양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원의 중심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아무것도 놓여져 있지 않지만 그 중앙에 서게 되면 모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사열하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아쉽게도 지금은 그 곳까지 들어갈 수 없다) 과거 태양신을 위한 드루이드 교의 희생제사의식이 이루어진 장소답게 이 곳 역시 하늘과 땅의 연결고리였다.(이 의식은 지금껏 10월 마지막일의 할로윈 데이로 이어져 오고 있다.)

 

<스톤헨지, 영국 솔즈베리>

 

결국 기둥에서 시작된 중심성은 원이라는 형태로 이어졌다. 따라서 기념할 만한 사건을 기리는 땅에는 보통 원형 또는 이와 비슷한 형태의 건축물이 세워지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배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한 자리에는 브라만테(Bramante)의 템피에토(Tempietto),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였으며, 후에는 마호멧이 승천한 자리라 여겨지는 바위위에 건설됨 바위돔(Dome of Rock), 호류지를 창건한 쇼토쿠 태자가 명상중 부처님을 만난 곳에 세워진 몽전(夢殿) 등이 대표적이다.

 

<템피에토(좌, 로마), 바위위의 돔(중앙, 예루살렘), 몽전(우, 일본 나라 호류지내)>

 

이에 비해 사각의 건축물 형태는 일반적으로 중심성보다는 일정한 방향을 가진 흘러가는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기다란 사각형 형태의 성당 내부에서는 미사라는 기능이 필요하나 시선과 움직임이 머무르지 못하고 그냥 흘러가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성당의 중간에 원형의 공간을 설치하였다. 그 공간은 돔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는데 원래 돔이란 내부에 기둥없는 대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으므로 기능과 구조 모두를 만족시키는 형태인 셈이다.


원형의 공간과 사각의 공간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복합적 형태로 건축된 최초의 건축물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er)이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골고다 언덕위에 세워졌는데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가 예수님 사후 3세기에 건축한 것으로 예수님의 무덤과 골고다라는 상징적인 장소는 원형으로 처리되고 신도들의 미사와 집회를 위한 공간은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두 공간이 병렬적으로 연결되었다.

 

<원형과 사각형 평면이 병렬조합된 성묘교회, 예루살렘(우측은 예수님 무덤)>

   

 

로마의 성배드로 성당에 오면 이 원형공간과 사각형공간은 가장 완벽한 형태로 구사된다. 원래 미켈란젤로에 의해 최초로 지어진 성당은 그릭 크로스(팔의 길이가 모두 같은 십자형)로 완전한 대칭구조 즉, 중심성이 강한 구조였다. 그러나 이후 교황의 명에 의해 입구부분이 길게 확장되는 라틴크로스(아래가 더 긴 십자형)로 바뀌어 좀 더 중심성보다는 방향성이 강조된 형태가 되었다. 또한 베르니니(Bernini)에 의해 성당 앞 타원형 광장이 만들어졌는데, 이로서 성당의 돔 하부가 갖는 천상으로의 중심성과 광장의 오벨리스크가 갖는 지상의 중심성이 완성되었고 이를 성당의 직사각형 형태가 연결해주는 완벽한 공간으로 탄생한 것이다.

 

<성 배드로 성당, 바티칸>

 

원형과 사각형을 도시공간으로 확장하여 본다면 원형(중심성)은 광장, 공원과 같은 오픈 스페이스이며, 사각형(방향성)은 개별건축물로 이루어진 도로 등 오픈스페이스를 연결해주는 통로구실을 하게 된다. 그런데 동양과 서양사이엔 약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 서양에선 분명한 이분법적 사고로 원형과 사각형을 개별적 객체로 구성한다. 로마의 카피톨리노(Capitolino, 국회 Capitol의 어원) 언덕은 로마의 원로원이 있던 자리에 2개의 건축물이 증축되면서 ‘ㄷ'자 광장으로 만들어졌다. 미켈란젤로는 이 광장에 독립적인 중심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 동상을 중심에 세우고는 그것도 모자라 원형형태의 바닥무늬를 추가하여 광장이 그냥 빈공간이 아니라 옆에 있는 건축물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별개의 건축물(물론, 물리적 실체는 없지만)임을 명백히 하였던 것이다.

 

<카피톨리노 광장, 로마>

 

이에 비해 동양에서 오픈스페이스는 결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마당은 반드시 건축물에 종속된 관계로 구성된다. 마당은 어떠한 중심성도 갖지 못하며 건축물 내부에서 벌어지는 행위들이 확장되는 공간으로서만 기능한다. 경조사나 제례의식이 행해지는 우리의 광장은 그 광장에 접하고 있는 건축물(종묘 정전 앞마당,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 또는 일반 한옥집의 마당에 이르기까지)의 연장선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종묘 정전앞 마당>

 

그런 영향일까? 서양의 광장은 개별적인 건축물에 둘러싸여 건축물의 입구가 광장에 면하는 형태로 구성되고 거기에는 항상 탑이나 분수대 등이 놓여 중심성이 강조되지만, 우리의 광장은 텅텅 빈 형태로(심지어 한옥의 중심마당에는 나무 한 그루조차 없다.) 광장을 거느린 건축물과 한 단위로 구획되어 있다. 서양의 광장이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퍼블릭(public)한 개별적 장소로 대접받는 반면에 우리의 오픈스페이스는 아무리 비어 있어도 프라이트(private)한 곳이므로 항상 담으로 바깥과 구분을 지어놓는다. 공공청사건, 학교 운동장이건 모두 그렇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서양의 개념으로 도입해 놓은 건축법상의 1층 공개공지, 아파트 발코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나의 사적인 공간으로 모든 것을 편입하기 위해 벽으로 담으로 이 모든 공간을 꼭꼭 닫아버린다.


유럽의 도시를 거닐면서 우리가 보행의 기쁨과 여유를 느끼며 유쾌함을 가지는 것은 아름다운 건축물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저기 1층 지면에 벌려진 원형 공간-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중심과 그 모인 공간에 차려진 개방된 노천카페에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접근할 수 없는 개인 주택의 발코니까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시각적 공유를 위해 샷시대신 꽃을 심어 놓기까지 한다. 사적인 공간을 공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여유-그것이 사각형 공간으로 가득 메워져 버린, 그래서 통로와 방향성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도시에서 이제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2005.6.4)

 

 

free coun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