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문화]/건축이야기

건축이야기(9)-세계의도시(2)

budsmile 2008. 7. 3. 17:27

예전 발칸반도의 중심국가이면서 제3세계를 이끌어왔던 유고슬라비아는 현재 7개의 나라(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고 코소보까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각각의 민족만큼이나 자연환경과 생활풍습이 서로 달라 과연 어떻게 이들이 근 50년간 정치적 동거를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해에 접한 옛 유고의 아름다운 해변 대부분을 차지하며(바로 여기가 점박이개로 유명한 달마시안지역이다) 독특한 문화를 자랑한다.

 

크로아티아엔 세 개의 중심도시가 있다. 수도인 자그레브(Zagreb)와 스플릿트(Split) 그리고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모두 오래된 중세도시이면서 특유의 매력이 충만한 곳이다. 스플릿트는 원래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별궁이 있던 곳이다. 4000평이 넘는 거대한 궁전은 로마시대 특유의 십자형 가로 곳곳에 위치한 황제의 영묘와 신전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지금은 폐허가 되어 오래된 대리석 벽들만이 남아 있지만 폼페이처럼 넓은 벌판에 발굴당시 모습 그대로의 황량한 유적지를 연상할 필요는 없다. 그 오래된 벽들을 이용하여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지붕을 만들고, 쇼윈도를 설치하여 장사를 하고 있었다. 로마시대 열주와 신전앞마당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광경은 마치 영화세트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건 명백히 문화유적 훼손이다. 과연 그럴까?

 

<스플릿트 로마왕궁 유적지 내 풍경-유적지가 곧 도시다>

 

하지만 스플릿트는 여전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다. 과거의 유산은 박물관처럼 구경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그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후손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있다. 이 도시는 로마황제의 것이었지만 1700년이 지난 지금도 동시대의 사람들에 의해 계속해서 살아 숨쉬고 있는 역동적인 장소인 셈이다.

 

두브로브니크로 가려면 스플릿트에서 버스를 타고 5시간정도를 달려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가는 도중에 보스니아 국경을 한 번 넘어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따로 떨어진 섬처럼 영토의 일부분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밖에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로 나뉜 팔레스타인, 오만,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브루나이, 동티모르 등도 그러하다. 국경을 육로로 넘을 수 없는 우리에겐 참 신기한 경험이다.

 

두브로브니크는 우리에겐 낯설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정신적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보스니아 내전당시 이 도시가 세르비아군에 의해 박격포공격을 당하자 프랑스 학술원회장이 프랑스 지식인들을 이끌고 인간방패를 자임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에메랄드를 녹여 놓은 듯한 아드리아해의 짙푸른 바다위에 빠알간 지붕이 가득한 도시는 쏟아지는 햇살만큼이나 눈부시다. 역시 세계문화유산인 이 고풍스런 중세도시도 성벽안으로 들어가 가까이 가서 보면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아직 전쟁으로 인해 총탄흔적이 여기저기 박힌 건물들에는 간판이 내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삶의 모습들이 이 도시에 활기와 신선함을 주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전경>

 

문화유적은 박제되어버린 과거의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북적이는 한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건축물'이 된다.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그건 흉가며 죽어버린 도시다.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마치 누군가가 봐서는 안되는 양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 만져볼수도, 내부를 들여다볼 수도 없다. 몇 년전 매번 가던 경복궁이었지만, 난 그런 우리의 고건축과 문화유산에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을 갑자기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출입금지 표지판을 넘어 경회루위를 뛰어올라 갔다. 그리고 경비원에 의해 발각되어 끌려내려오기 10분 동안 난 경회루의 가장 중앙, 왕이 앉도록 설계된 자리에서 경복궁의 훌륭한 공간을 맘껏 감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젊었을 때의 치기어린 행동이었지만, 그 덕분에 경회루와 경복궁의 아름다운 공간을 누구보다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게 되었다.

 

<경복궁내 경회루>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참 훌륭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리고 왜? 체험을 하지도 그래서 느끼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난 심심한 불국사보단 스님과 신자들로 북적이는 봉은사를 더 좋아하고, 남산의 깨끗한 전시용 한옥마을보단 가회동의 사람냄새나는 북촌 한옥마을을 더 찾는다.

 

경주와 같은 우리네 고도는 문화유산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도시와 집을 가꿀 수 있는 자율성을 철저히 구속당했다. 그렇다고 그 집들이 옛날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주는 한옥도 아니다. 문화유적들은 그러한 어정쩡한 현대 콘크리트 도시 한 가운데 고립되어 현대를 살아가는 신라의 후손들을 거부한 채 고독한 과거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일까? 석굴암이 환상적이다는 말은 들어도 경주가 참 아름답다는 말은 외국인들에게서 듣기 힘들다.

 

경주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다. 하지만 도시전체가 아니라, 남산지구, 월성지구등 5개의 개별적 역사지구가 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된 것이다. 경주는 앞서 크로아티아의 스플릿트만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하지만 두 도시가 보여주는 현재의 모습엔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 전통과 문화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은 아닐까? 마찬가지로 건축과 도시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속에서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닐까? (2004.6.4)

 

 

*** 2005년 6월부터 경회루가 하루 세 차례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경회루의 아름다움은 물에 비친 완벽한 비례의 누각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실제 그 장소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