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8)-세계의 도시(1)
세상엔 참 많은 도시들이 있다. 그 도시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환경과 물리적 조건들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독특한 문화를 가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도시는 제 나름대로의 색깔을 갖게 되며 그것은 도시가 갖는 구성 요소들 즉, 도로, 주택, 자연환경, 공공시설, 광장, 녹지 등이 조합된 형태를 통해 표현된다. 여기에 도시의 매력이 있게되는데 그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질성'이다.
인도에는 '바라나시'라는 도시가 있다. 갠지스강(현지인은 '강가'라 부른다.)이 흐르고 강변 바로 옆엔 시체를 태우는 장작불빛이 가득한 화장터가 있는 힌두교의 성지이다.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순례객들은 어슴푸레한 새벽녘 강가로 나가 몸을 씻는다. 팔이 떨어져나간 나환자들, 늙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연거푸 강가의 품에 안기는 동안 한쪽에선 빨래를 하고 그 물로 양치질을 한다. 자세히 보면 강위엔 시체들이 떠다닌다. 어린아이와 짐승, 사두(고행을 하며 돌아다니는 힌두교 성자를 일컫는 말)는 원래 화장을 안하고 바로 강가에 던져지기도 하지만, 가난한 탓에 자신의 몸을 완전히 태울 장작을 사지 못해 반쯤 그을린 채로 떠다니는 시체가 많기 때문이다. 도시의 한복판에 있는 노천화장장의 시체타는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삶과 죽음의 모든 애환이 녹아있는 강가의 이 모든 풍경을 보는 것은 참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바라나시 강가에 있는 화장터>
삶과 죽음이라는 공존하는 이질성은 그 도시의 공간구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타지에서 운반된 시신이 강가의 화장터에 이르는 길은 하나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같다. 도시의 초입에 있는 평탄한 길은 곧 막다른 길과 미로로 이루어진 골목길에서 헤매게 된다. 인생의 굴곡을 상징하는 이 의식의 정점에는 금으로 장식된 힌두교 사원이 위치하고 여기를 통과하면 갑작스레 나타난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가 되 속세의 카르마를 벗어나게 된다. 이에 반해 속세의 인간들이 다니는 길은 화장터와 직접 맞닿아 있지 않다. 도시의 초입에서 사자(死者)의 길과 분리된 널따란 길은 강가에서 몸을 씻는 장소로 통하게 되며 길 전체가 북적이는 시장이다. 아무렇게나 지나다니는 소의 배설물로 가득찬 흥정과 구걸과 활기로 넘치는 이 거리는 이 도시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인 셈이다.
'이질성'을 논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이다. 고층빌딩과 현대식 쇼윈도우로 가득찬 신시가지 한복판에는 고립된 섬처럼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가 있다. 성문을 들어서면 갑자기 시간은 천년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좁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흙벽돌 집들 사이로 보이는 광경이 예사롭지 않다. 오래된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손수레에 야채를 놓고 파는 모습하며 향내와 함께 들려오는 독경소리는 성서시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좁은 구시가에 4개의 종교와 민족이 모여 살고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아르메니안 정교인들은 묘하지만 독특한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며 도시의 각 부분을 구성한다. 예수수난으로 유명한 빌라도법정에서 골고다에 이르는 길(비아 돌로로사)에 위치한 각종 기념교회와 골고다언덕의 성묘교회, 유대교 법회당인 시나고그, 이
슬람 모스크등이 불과 20여미터 간격을 두고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지역은 흔히 '바위돔'이라 불리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곳은 유대교(솔로몬시대 유대궁전터), 기독교(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던 곳), 이슬람교(선지자 마호멧이 승천한 곳) 모두의 성지이다. 이 좁은 곳에 이렇게 많은 종교와 민족이 모여 살지만 신시가지와 같은 그 흔한 폭탄테러 한 번 나질 않는다. 서로를 인정하는 '이질성'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의 균형이 예루살렘의 공간적 매력을 형성한다.
<바위돔이 보이는 예루살렘 구시가 너머로 성벽밖 서예루살렘의 고층빌딩이 보인다>
이 밖에도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이 공존하는 이스탄불(터어키), 슬라브계와 게르만계 문화가 공존하는 상트 페테르부르그(러시아), 기독교와 히피문화가 공존하는 암스텔담(네덜란드), 인디오와 서양문명이 공존하는 쿠스코(페루) 등이 '이질성'이 만들어낸 멋진 도시들이다.
서양 여행객들이 즐겨 들고 다니는 여행가이드북 중에 'Lonely Planet'이란 게 있다. 이 시리즈 중 'Korea'편을 보면 기가 막힌다. 한국은 어느 도시나 똑같은 모양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특색없는 회색빛 현대도시이므로 봐야 할 관광 포인트가 없다고 설명해 놓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조건과 환경이 모두 달랐을 것임에도 획일적으로 형성된 우리의 도시들은 곧바로 우리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질성'에 대한 욕구는 우리에게도 있다. 지난 월드컵때 옛것과 현대적인 것의 조화라며 거리마다 내걸린 서울사진엔 경복궁과 마천루가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도시속에 위치함으로서 갖게 되는 일종의 유니크한 문화적 힘을 서울이 과연 갖고 있을까? 도시가 '이질성'에 의한 매력을 가지려면 단순히 나타난 시각적 현상의 비교이상의 그 무엇, 그 이질성을 끊임없이 살아있게 만드는 공간조직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2004.5.8)